고래가 부르는 노래
학교 그리고 아이 본문
각자 다른 꿈을 꾸지 못하고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미친듯이 달려가는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아이를 재물로 바치지 않으려 대안교육이라는 옆길로 들어선지 이제 5개월째다.
대안교육 중에서도 지금 이 학교를 선택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교육내용과 운영'면에서 우리는 학교가 하나의 뚜렷한 교육철학을 가진 곳이길 바랐다. 모든 학교가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멋들어진 형이상학적 문구들을 실제 현장에서 풀어놓을 때는 각자 해석하는 바가 다르게 마련이다. 심지어 공교육의 모든 학교들도 문구만으로 보면 참으로 좋은 교육 목표들을 가지고 있다.
유연함과 융통성이 결여된 철학과 소신은 권위적인 교조주의나 딱딱한 원칙주의로 빠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우선 긍정적인 믿음을 가져보기로 하고 이 학교의 문을 들어섰다.
* 아이를 살펴보다.
아이 한 명, 한 명 개개인의 기질과 성향을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에 따라 교육의 속도와 내용을 맞추는 교육.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이란 저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학교에서 지금 윤우는 그런 교육을 받고 있는걸까. 5개월동안의 학교생활이 윤우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윤우는 최근 '나니아 나라 이야기'라는 7권짜리 네버랜드 클래식 문고를 다 읽었다. 보통 4~5학년 아이들이 읽는 글밥과 내용의 책인데, 읽어달라고 졸라도 지금은 안된다며 읽어주지 않았더니 혼자서 읽어버렸다. 물론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했다기 보다 그저 '글'을 읽고 스토리를 따라간 것 뿐이겠지만
윤우는 2자리 셈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드 게임을 하는데 말을 18칸 앞으로 보낸다고 하면 "지금 여기에서 20을 더한 자리로 갔다가 2번 뒤로 가."라고 계산하고, "이거는 카드당 2씩 앞으로 가는거니까 카드를 하나씩 셌다가 두번 더하면 되." 라는 식으로 덧셈, 뺄셈, 곱셈을 스스로 익히고 있다.
윤우는 확실히 신체보다 머리가 더 발달한 아이이며 정확한 숫자와 정보를 들으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이런 아이에게 지금 나이는 육화가 진행되는 때이므로 인지교육과 정보서적을 멀리하고 몸을 쓰는데 집중시키는 것이 맞는 것일까?
자동차, 건물만 그리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사람, 동물, 식물을 그리라고 하는 건?
특히나 남자아이들은 하나에 깊이 빠지면 그 끝을 봐야지 고개를 들어 다른 주제를 살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떤 게 맞는 걸까?
인지가 좀 더 빨리 발달한 아이들이 신체적인 발달과 정서를 중요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존감에 악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약점에 집중하고 보충하는 방식이 아니라 강점에 집중하고 강화하는 방식의 교육이 될 수는 없을까?
결국 발도르프 교육도 공교육과 마찬가지로 발도르프적인 아이상을 가지고 그 틀에 아이를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발도르프에서 이야기하는 아이의 발달과정이라는 건 모든 아이에게 적용될만큼 넉넉하게 큰 틀인걸까.
* 같은 듯 다른 꿈?
모든 혼란스러움을 정리하는 첫 단추는 단어를 정의내리는 것이므로 ^^;;
나는 새삼스럽게 우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교육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특성을 타고나며, 그 개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과 개별성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개성과 개별성은 인간 누구나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현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교육은 이러한 과정을 이끌어내는 보편적이고 평등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부모 대상 강연에서는 이런 내용을 듣기도 했다.
'대상을 볼 때 우리는 우리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게 된다. '나는 이걸 좋아해, 이걸로 이렇게 할까' 등등.
그것은 대상 자체에 대한 탐구가 아니다. 대상이 복잡할 수록 우리는 대상과 분리되며 자기 위주로 해석하고 바라본다.
아이도 이 세상에 온 분명한 목적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파악하기 어려워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다.
아이가 이런 점이 부족하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을 기르고자 한다. 사회, 타인, 물질 그리고 심지어 내 자신에게조차도 자유로워서 온전한 관찰이 가능한 인간 말이다. 아이들 안에서 그 자유로움의 힘을 키우기 위해 교육적으로는 많은 제한과 원칙을 두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것이다.
결국 학교와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목적은 같으나 베스트라고 여기는 실행방법이 조금 다른 것이었다.
아이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아이 스스로를 자신을 온전히 알게하는 점을 중요시하는 것은 같으나
나는 아이에 대해 알게되는 것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아이가 던져주는 신호와 사인을 통해서라고 생각했고
학교는 '자신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교육의 힘이 아이를 통과한 이후 아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다른 곳에 갔으면 다를까?
여러 날의 고민 후에 내가 꿈꿨던 이상적인 교육이란 다수의 아이들을 소수의 교사가 돌보고 가르치는 방식인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어짜피 불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 개인교수법이나 홈스쿨링을 통해서라면 그럼 가능한걸까 궁금해져서 홈스쿨링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중 <오뚱이네 홈스쿨링>이라는 책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이 가족은 두아이가 학교를 나온 후 '학교와 교육'이라는 주제 안에서 맴돌고 고민하다 캐나다 유학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캐나다의 어느 공립학교는 아이들마다 각자의 속도와 이해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공부하며 이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선생님들이 도와주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족은 공립학교에서 이런 교육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에 놀라워하며 입학을 하게 되는데,
중심이 잡히지 않아 산만한 환경과 선생님 수가 부족하여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온전하게 서포트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물론 이들이 학교를 그만둔 게 저 이유때문만은 아니었다. 학교생활 초반에 있던 아이들의 불평이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졌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보다 아이들의 배움을 점수와 등급으로 판단하는 학교 시스템의 어쩔 수 없는 평가방식을 아이들의 엄마가 불편하게 여겼고 홈스쿨링의 날들을 그리워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학교를 갔더라도 고민거리는 있었을 것이다. 공교육을 선택했다면 경쟁 시스템에서 아이를 다치지 않게 지키는 법을 고민했을 것이고 대안학교 중에서도 학생의 자치가 중요시되는 써머힐같은 곳에 만약 갔다면 그 혼란스러움 바라보는게 어른으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여기에서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배움에의 욕구를 키울 망정 두려움을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불안함을 즐기자
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발도르프적 가치관에 공감하며 이러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공통의 가치관으로 삼는 공동체에 있다는 점이 행복하다.
그런데 아이에게 학교생활을 물어보면 '조금 시시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집에서는 위에서 이야기한대로의 행동을 보였으며 자주 심심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아이가 나에게 '나는 더 많은 지적 자극이 필요한 아이예요.'를 신호로 보내주고 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동체 안에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 아이의 박탈감을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닌지 갈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학교에 있으면서 난 또 앞으로 많은 의문과 궁금증 또는 불안을 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아이를 온전히 관찰하는 것이며
불안은 없애고 빨리 해결해야할 무언가가 아니고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교육 그리고 배움
학교에서 진정한 교육이란 가능한 걸까? 로 시작되었던 내 물음.
그런데 이 물음에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중요한 전제가 깔려있었다.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무언가이다. 라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교육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주는 것이므로 그 어떤 것이 최고의 것이 아닐까봐 계속 불안했던 거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배움'을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배움은 학교라는 울타리가 어떤 것이든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인생 그 자체가 배움이므로.
이런 고민, 이런 생각 하나하나 또한 배움일 것이다.
이 학교 속에서 아이와 나와 우리 가족은 어떤 배움을 얻게 될까. 나와 아이를 믿고 두근거림 속에서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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