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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책] 명화를 그림책으로 보여주는 진짜 이유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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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우책] 명화를 그림책으로 보여주는 진짜 이유는?

고래의노래 2012. 1. 31. 02:21
아이를 낳고 유아책 분야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을 때 명화를 소재로 한 유아용 그림책들을 보고 식겁했었다. 고흐, 로댕, 마티스 등의 작품으로 '사물인지'를 알려주는 책들이었는데, 이를테면 고흐의 <노란의자> 그림을 보고 "의자"라며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책을 만들어낸 출판업자들과 부모들의 마음은 이런 걸꺼다.

- '명화'를 아이들에게 익숙하게 한다. 어디가서도 "어, 이거 내가 아는 그림인데?"라는 말이 튀어나올 수 있게.
- 공인받을 정도로 우수한 명화의 색감과 형태를 통해 미적 감각을 기른다.

그런데 정작 아이가 미술관에서 <노란의자>를 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 저거 의자그림책에서 봤던 거!" 이것 이상이 될 수 있을까? 명화가 명화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림의 시각적 훌륭함보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 배경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명화를 본 게 아니라 그야말로 '의자 그림'을 본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나에게 미술관은 참 재미있는 장소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이런 표현방식이 비일상적인 감각의 경험이나 사고의 전환을 유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미술보다는 현대미술 전시가 더 흥미롭다. 예술가들은 항상 틀을 깨는 사람들이다. 물감을 흩뿌린 잭슨 폴락의 그림을 화가의 의도를 읽지 않고 본다면 그저 "나도 저 정도는 하거든!"이란 말만 나올 수 있을 뿐이다. 고흐, 고갱과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훌륭한 것도 화폭에서 그들이 실행한 '보이는 미술로의 혁명'때문이다.
이렇듯 미술작품을 볼 때 또 다른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열린 태도가 있지 않으면 감동도 흥미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윤우가 미술관을 따분한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직까지는 '어린이 미술전'만 가도 밖에 나가겠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말이다. -_-;;

유아용 그림책이 작가의 의도까지 품고 명화를 설명해주기란 쉽지가 않다. 초등학생 대상으로는 이런 책들이 다수 있지만 유아대상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단순한 사물인지 그림책으로 명화가 활용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몇 달 전 <그림책 육아>라는 책을 통해서 아주 훌륭한 명화 그림책을 찾았다.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유아 수준으로 매우 쉽게 이야기하면서 그림을 즐기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림보고 놀자!>시리즈이다.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딱 2권 뿐이다. 이렇게 좋은 책이 왜 시리즈를 더 만들어내지 않는지 안타깝다.

쿵짝짝 소리 나는 그림, 김환기 - 10점
문승연 지음/길벗어린이

김환기는 굉장히 유명한 근현대 한국화가이다. 그런데 미술사 좀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근현대 한국 화가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관심했던 탓이다. 반성, 반성...;;;
'점화'로 유명한 김환기는 유학 시절을 통과하면서 한국적인 서정미를 세련된 화풍으로 완성하게 된다. 책 뒤에 있는 김환기의 사진을 보면 까맣고 두꺼운 뿔테 안경에 하얀 셔츠를 입고 있는데 1930~40년대의 모던보이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의 장을 연 화가로 평가되는 김환기의 작품은 사실적 묘사가 아니기에 더욱 더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작품 <봄의 소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정말 멋지다. '소리'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각 색깔 점들에 소리를 부여했다. 색깔 점들을 보면서 '쿵짝짜~♬'거리다 보면 그 경쾌한 소리에 정말 봄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색깔점을 소리로 바꾸는 걸 윤우는 굉장히 재미있어 했다. 파란 점들이 계속 이어지면 "짝짝짝짝짝짝~~~~~"하는 부분에서는 신이 나서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모티브로 그린 작품인데, 김환기의 점화가 가지는 의미를 응축해 놓은 듯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윤우는 가끔 "별 하나에 스티커, 별 하나에 자동차..."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대입하고는 한다.

 
윤우의 점화가 욕실 벽에 피어났다. 뻘건 욕조 물과 벌거숭이 아이(중요한 곳은 손으로 가려주는 센스;;) 때문에 자꾸 눈이 화면 아래로 가지만 중요한 점화는 화면 위 욕실 벽에 있다. ^^ 점으로 그린 숫자와 알파벳들.
점 하나를 찍으며 화가가 품었을 애달픈 마음을 윤우가 온전히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겠지만 소중한 것을 표현하는 데에는 '점 하나 찍는 것'만으로도 가능할 때가 있다는 것. 그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에서 윤우가 즐거움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

올해는 김환기 탄생 99주년으로 갤러리 현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하고 있다. 2월 말까지 진행된다고 하는데 날씨가 조금 풀리면 윤우 손을 잡고 '김환기의 점'을 보러 가봐야 겠다.


* 갤러리 현대 - 김환기 회고전
http://www.galleryhyundai.com/kor/exhibitions/introduction.asp?SiteNum=1&sYear=&ExhibitionsPK=278

회고전이 끝나더라도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 교육도 진행하는 듯 하니 초등이상 아이라면 참여해도 좋겠다.

* 환기미술관
http://whankimuseum.org/new_html/main.php
* 환기미술관 어린이 사이버 미술관
http://junior.whankimuseum.org/


내 그림과 닮았어요, 장욱진 - 10점
문승연 지음/길벗어린이(천둥거인)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화가 라고 한다. 김환기처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ㅜ.ㅠ
김환기가 한국의 정서를 세련미로 표현했다면 장욱진은 이를 소박하게 담아내고 있다.


화가는 하늘에 함께 떠 있는 해와 달로 모든 시간을 표현했지만 사실 해와 달은 함께 떠 있는 시간이 참 많다. 낮에 하늘을 두리번 거리다 보면 태양의 반대편쯤에 허옇게 떠있는 달을 자주 보게 된다. 해와 달이 함께 뜰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알았다. 시험문제에 이런 문항이 나왔는데 거의 모든 친구가 틀렸다.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낮에도 하얀 달이 뜨곤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을 때 그 충격이란!!!
그런데 윤우는 벌써 이 사실을 뻔히 알고 있다. 낮에 하얀 달이 보이면 달이 떴다고 별 의심도 없이 이야기한다. 해가 짙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일 때도 "달인가?"하고 묻는 걸 보면 달과 해를 밤과 낮으로 구분하지 않고 '희미함'과 '밝음'으로만 구분하는 것 같다. 오늘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하늘의 달과 해를 보더니 "낮인데 밤일까요? 밤인데 낮일까요?"하며 책에서 본 내용을 중얼거린다. 혼란스러움 없는 받아들임. 어린 마음의 '말랑한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책의 구멍들이다. 뚫린 구멍을 통해 뒷 그림을 상상하게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김환기의 그림에서 '리듬감'으로 흥미를 유발했다면 장욱진 편에서는 '상상'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화가가 주로 사용한 모티브를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리해서 설명해준다. 장욱진은 아이처럼 소박한 그림체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화가라고 한다. 책 뒤에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캔버스를 놓은 채' 그림을 그리는 장욱진의 사진이 있다. 마치 밥먹다가 신문보는 포즈이다. 화가에게 그림이란 건 그만큼 특별할 것도 없는 자신의 삶 그 자체였던 걸까.

장욱진 미술관은 양주시의 장흥관광단지에 2012년 말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라고 한다.
대신 장욱진 사이버 뮤지엄에 꽤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있으니 미술관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모니터 화면으로 충분히 감상을~

* 장욱진 사이버 뮤지엄
http://www.changucchin-museum.com/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http://www.ucchinchang.org/
* 장욱진 미술관 - 공사중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186249

그림과 음악같은 예술을 접하게 하면서 윤우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이런 거다.

- 사람들은 각기 참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
- 그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고 그 매개물로 교감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는 것.
-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것.


윤우 화백이 표현한 '요즈음 마음'이란 건 이런 거다. <사탕공장>
사탕을 마음대로 먹고 싶은 마음을 엄마에게 전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안타깝게도 이것만은 깊게 교감해줄 수가 없구나. -ㅂ-;; 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