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엄마, 당신은 모른다> - 결국 '너'는 '내'가 아니기에. 본문
엄마, 당신은 모른다 - 정미희.박준 지음, 박종우 사진/청년정신 |
잡지에서 이 책을 어떻게 소개했었는지 정확한 글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이런 거였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만을 바란다면서 공동육아에 보내고, 자연 속에서 뛰놀게 하고, 여행을 많이 데려가면서 내 자신이 '좋은 엄마'라고 믿고 있었는데...아이는 말했다. '엄마, 당신은 날 모른다.'고..."
정신이 번쩍드는 글이 아닐 수 없었다. 저 글귀 그대로 실천하면서 '좋은 엄마'가 되리라 날마다 다짐하고 있던 차였으니까. 오소희씨와 중빈의 사랑 가득한 여행기를 읽으며 윤우와의 여행을 머리 속에서 매일매일 상상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준이는 여행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아빠를 따라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모든 것을 흡수할 그 말랑말랑한 나이에 세계를 여행하다니!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우고 왔겠구나 싶지만 준이는 한 마디로 얘기한다. "짜.증.나!!!!"
핵심은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인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임신했을 때 태교로 에밀을 읽으며 자연의 아이를 꿈꿔왔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꿈꾼다. 건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윤우가 자라길. 내 머리 속에서 이미 10살 정도로 커버린 윤우는 게임 캐릭터 보다도 나무 이름과 풀벌레 이름을 더 많이 알고 게임 머니를 모으기 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저금통을 채워넣을 줄 아는 아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가치관'이고 나의 '희망사항'일 뿐임을 인정해야 하리라. 아이 존중 육아 또한 그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만 충실하자는 노력일 뿐, '내가 바라는 대로' 자라주는 마법이 아니라는 걸. 윤우를 키우는 육아 철학에 대한 핵심에 흔들림이 없되, 그것은 나의 '이상형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가야 할 윤우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임을 줄곧 기억해야 하겠다.
윤우는 결국 내가 아니고 '또 다른 한 사람'이며 그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켜봐야 하리라.
이 책이 더 가치있었던 것은 '성공기'가 아닌 뼈저린 '후회의 모음'이며 '불협화음 악보'이기 때문이다. 인생 선배들의 경험을 훔쳐올 수 있는 가장 값싼 방법으로 독서를 선택하는 사람이라면(사실 누구라도 그렇지만..) 이 책은 그 중 가장 본전뽑는 책일 것이다. 후회를 담은 육아서가 흔치 않기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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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던 중학시절, 준이는 눈 한 번 곱게 뜨지 않았다. 반항의 눈빛은 청춘의 상징이라지만 그건 제임스 딘이 바라볼 때나 멋있을 뿐이다. 사춘기의 준이를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 "엄마?"하며 부르던 준이의 따뜻하고 사랑스런 말투가 떠올라 더욱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그러하듯 준이네 학교도 3학년부터 일제고사를 봤다. 나는 '초등학생이 평소 공부면 충분하지 시험공부가 따로 필요할까?'하는 생각에 시험공부를 우습게 알았다. 가령 시험범위가 '화석을 찾아서'라면 공룡에 관한 책이나 읽어보도록 하는 게 전부였다. 4학년때까지는 그럭저럭 성적을 받아오더니 5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지금 생각해보면 '시험을 앞두고 2,3주정도는 차분히 공부를 시키는 게 나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든다. 공부도 습관인 것이다. 평소엔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더라도 시험을 앞두고 1년에 몇번쯤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보는 습관을 들였어야 했다.
초등학교가 끝나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준이와 좀 더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점이다. 우리 가족은 준이의 초등학교 시절까지 좋은 영화도 많이 공유했었다. 나는 좋아하는 뮤지컬이나 예술 영화가 상영되면 J와 함께 아이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쇼셜 클럽>을 보고 일기에다 "이 영화음악은 GOD, HOT 정말 저리 가라다....."고 썼다. 준이는 <가면 속의 아리아>,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뮤지컬 영화를 보고선 영화에 나온 음악을 몇 달씩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가 시간에 준이가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 때 나와 J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주 잠깐 놀아주는 시늉만 하거나 슬그머니 넘어가 버린 적이 더 많았다. 이제 내가 준이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준이는 내게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후회가 가슴을 찌르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는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한다. 부모님이 내게 해주셨듯 나 자신이 준이에게 사랑을 다하고, 내가 부모님께 무심했듯이 준이도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 뿐이다....그러니 세상의 부모들이여, '아이가 원할 때, 아이가 함께 놀자고 할 때 마음껏 즐기시라.' 세월은 날 위해 멈추지 않으니.
나는 무엇보다 준이의 장래가 걱정스러웠다. 공부는 안 해도 기본적인 책임감은 길러야 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준이는 양 옆에 눈가리개를 한 말 같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준이에게 눈가리개를 해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준이에 대한 배려없이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결정해 왔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준이는 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했고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엄마로서의 한계를 나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나는 생각해본다. 만약 준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까? 준이의 대답은 "그럼 더 안 했을걸?"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원칙이 흔들렸던 것, 그리고 준이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좌우 살펴보지 않고 공부에만 올인하여 '공부를 잘 해야 잘 산다.'는 생각을 심어주거나 초등학교 때처럼 자유로운 사고, 준이만의 세계를 존중하여 스스로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다. ...
설익은 확신이 제자리를 찾으며 그전의 소중한 추억들이 다시 준이에게로 돌아오고 진정한 빛을 발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결국 나는 어떤 아들을 바라고 있었나.
준이를 낳고 키우면서 단 한번도 공부로 일등하길, 돈 많이 벌고 일류 회사에 들어가길 바란 적은 없었다. 그저 준이가 행복하길,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길,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초등학교 땐 음악과 미술, 운동을 통해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랐으면 싶었고, 중학교 땐 기초만 다져놓으면 된다고 말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자기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 열심히 하면 될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준이라는 주체를 나의 가치관에 짜 맞춘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공부못하는 자식을 둔 엄마는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면서도 공부 못하는 아이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 수업만 성실하게 들어도 중간 이상은 갈 수 있다고 믿었다....이제는 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습관이며 태도라는 걸, 목표 의식과 집중력이 없으면 공부를 잘 하기 어렵다는 걸. 그리고 이해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공부 못한다고 다른 능력도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 여행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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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 초등 2학년 아이와 함께하기 최고의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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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 여행은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체험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준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처럼 재미있게 여행을 즐긴 건 처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유익하다고 믿고 빡빡하게 짜 놓은 일정이 준이를 여행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해 놓은 게 아닐까 싶다. 쉴 땐 푹 쉬어야 하는 것을 여유시간만 생기면 숙제부터 꺼내놓고, 차를 타고 갈 때면 영어 단어를 외우게 했으니...
다국적 영어 여행 - 런던에 본사를 둔 트라팔가 투어
: 준이는 물론이고 내 영어도 무척이나 짧아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끝나고 나서 '가장 가치있는 투어'였다고 준이는 평가했다. 스스로 찾아서 자신만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J - 스리나가르 호수의 하우스보트를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꼽음. 스리나가르는 잠무카슈미르 주의 주도로 아름다운 달 호수와 무굴제국의 정원으로 유명한 히말라야 등산의 거점도시이다. 세계적인 관정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오랜 종교분쟁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져 호수에 떠 있는 호텔인 하우스보트는 비어 있는 곳이 태반이었다. 한밤중에 터지는 총소리가 마음을 불안하게 했지만 달 호수는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나는 외아들인 준이를 혼자만 생각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려고 애써왔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옷도 새 것을 사 준 적이 거의 없다. 일하는 엄마인지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것에도 미안해 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준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준이는 엄마와 단 둘이 떠난 크루즈 여행에서 즐거움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준이도 형제나 친한 친구와 함께 였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길게 하는 크루즈라면 친한 사람들과 그룹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님 나이들어 부부가 오붓이 하거나....
* 준이의 글
외국인과 말을 섞기 싫어하는 나에게 여행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 소극적인 성격에 부담.
콜럼비아 아이들의 따돌림.(크루즈 여행)
자기중심적인 생활이었던 중학시절이 의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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