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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아들의 눈물

고래의노래 2015. 5. 11. 12:24

"엄마, 내려와봐."

윤우가 아파트 현관문 인터폰으로 밖에서 나를 내려오란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도 그냥 일단 내려오라는 말에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내려갔다.

 

"@@이 내 자전거를 계속 타. 나는 안주고 계속. 내가 자기 잡아야만 다시 준데."

자전거를 타고 오겠다며 윤우가 혼자 내려갔었는데 동네 친구인 @@를 만난 모양이다. 친구는 자전거를 한 번 타게 해다라고 했고 윤우는 빌려주었는데 오래 타고 난 뒤에 윤우가 다시 돌려달라고 했는데도 윤우를 놀리며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우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분통이 터졌다. 약삭빠른 친구들에게 윤우가 '당하고' 이렇게 서럽게 운 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나는 네 물건이니 친구에게 더 강하게 이야기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윤우가 친구에게 자전거를 빌려주었다는 자리에 가서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시 한 번 윤우에게 이야기했다.

"윤우야, 친구와 무엇가를 함께 쓰기 전에는 일단 서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친구가 따르지 않았을 때는 강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소리를 질러. 자, 엄마 따라해봐. 야!!!!!!!!! 내 꺼니까 이제 돌려줘!!!!!!!!!!!!!!!!"

아는 아파트가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따라해봐."

"잠깐만...." 흐느낌을 멈추려고 몇 번 시도하더니 윤우가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해보라고." 나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내 안에 있는 불덩어리를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소리 안질러도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 결국 윤우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평화주의자일까 의지가 약한걸까. 아님 속된 말로 벨이 없는 걸까.

 

조금 있으니 그 친구가 왔고 나는 그 아이를 불러세워 윤우가 한 말이 맞는지 물었다.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리저리 돌려 다른 친구들 핑계를 댄다.

"지금 이 이야기는 다른 친구들이랑은 상관이 없어. 너와 윤우 사이의 약속인거잖아. 윤우가 속상해하니까 윤우에게 사과해주었으면 좋겠다."

친구는 순순히 사과를 하고 자전거를 돌려주었다.

"앞으로 서로 규칙 만들어서 사이좋게 타."

 

나는 이렇게 사태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윤우가 올라와도 아는 척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십분쯤 뒤에 윤우가 올라와서 이렇게 말하는 건다.

"난 타지도 못했어. @@가 한 번 탄데서 줬는데 내 차례되니까 오르막길이라고 힘드니까 자기가 올려주겠다고 타고...난 타지도 못했어."

투덜투덜 불평을 한다. 내가 상황을 정리하고 온 이후에도 친구는 윤우를 위해준다는 핑계를 대며 자전거를 독차지했던 거다.

 

"네 거를 네가 잘 지켜야지. 강하게 말 해! 내가 말 안하면 친구들은 널 그렇게 대해도 되는 애로 알아. 너 바보야? 한 대 때려주지 그랬어? 때려서라도 가져와."

결국 남편은 터졌고 그저 불평모드였던 윤우의 울음도 터졌다.

 

윤우는 훈계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쁜 건 친구였고 자기를 속상하게 한 그 친구를 엄마 아빠에게 이르고 싶었던 거다. 윤우를 안고 이야기했다.

"그 친구 나빴다. 윤우는 그 친구를 믿어줬는데..사이좋게 놀려고 자전거도 빌려주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믿었는데 @@가 윤우에게 나쁘게 했어. 윤우야...괜찮아. 이렇게 착한 윤우 마음 하느님은 알고 계셔. 다 지켜보고 계셔. 아, 우리 착한 아들~ 하고 미소짓고 계셔."

윤우는 더 크게 더 크게 울었다.

"이러면서 윤우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고 있어. 괜찮아."

 

윤우는 그렇게 많이 울고 난 후 진정이 되었고, 남편은 윤우에게 다시는 그 친구에게 자전거를 빌려주지 말라며 다짐을 받았다.

 

윤우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사실 괜찮지 않다.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끊임없는 서열구분 딱 그거 라는데...힘과 악다구니의 서열로 따지자면 윤우는 아마 제일 아래일 것이다. 주먹을 휘두르라는 것도 아니고 소리라도 지르라는 건데, 그것조차 못하는(안하는?) 아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하나. '다른 친구가 때려도 넌 때리면 안 돼. 때리는 건 어떤한 경우에도 안 돼.'라고 가르친 것이 잘못이었을까. 우리가 윤우의 생각과 주장을 받아주는 적이 너무 없었던가.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미숙한걸까. 지금 윤우의 능력 안에서 윤우가 저런 상황에 '잘' 대처하는 방법은 도대체 무얼까.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윤우에게 말한 것처럼, 하느님은 온전히 윤우를 사랑하시고 기쁘게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옆에서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께 기도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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