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행복한 사람 타샤 튜터> - '타인의 취향'을 들여다보다. 본문
타샤 튜터의 열렬한 팬은 아니다.
그녀의 자연주의적 삶은 분명 우리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녀가 선택한 인생은 소로우나 니어링와 같이 '의지과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취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로 세금을 거부해서 철창 신세를 질 뻔 했던 소로우나 국가와 사회에 의한 감시와 통제, 억압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니어링의 투쟁적인 삶과는 달리 타샤의 자연 속 삶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
이는 이 책의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혼자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당일 밤이 되어서야 볼 수 있으며 그 동안은 트리를 볼 수 없게 응접실에 둔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의 의미를 가족 간의 따뜻한 화합과 즐거움이 아니라 '온전해야 할 자신의 작품'으로 대하는 자세에서 그녀의 자아도취적 성향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면 1830년으로 가고 싶다는 그녀의 삶은 그래서 '자연주의적 삶'이라기 보다 '앤티크 라이프(Antique Life)'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옛 물건과 옛날 방식에 대한 그녀의 찬양을 읽고 있자니 과거를 그리워하고 지나가는 현재를 아쉬워하며 '증거'를 모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추억에 얽매이는 편이라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를 수집해 놓았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며 찍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굳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학창시절에는 '이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며 애늙은이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중학교 실과 시간에 만든 아기 옷과 미래의 집, 가족 구상도, 친구들과 수업 시간에 돌렸던 쪽지들과 짝사랑했던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남기고 가셨던 분필과 드링크 병까지, 수집한 품목도 가지가지였다. 친정집에 놓고 온 그 추억거리들이 지금은 엄마의 청소력으로 모두 소멸되어 버렸다. 전단지 뒷면에 그렸던 어린시절의 그림 한 박스도 언젠가 친정에 내려가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ㅠ.ㅜ 신문에 끼여오는 광고 전단지가 내 스케치북이었던 셈인데, 적나라한 러시아 무희들의 사진이 있던 술집 광고를 보고 놀랐던 게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
가장 아쉬운 것은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스누피 인형이다. 물건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왠일로 그 손때뭍은 인형만큼은 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남겨두었었는데, 지금은 없다. 조금만 더 오래 보관해서 지금 윤우 손에 그것이 들려졌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생각난 김에 내 물건 중 가장 오래된 물건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다.
모두가 버리라고 성화인 빨간 더플코트는 2002년 겨울에 산 것이고, 지금 윤우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CP 플레이어를 산 것이 1999년. 조금 더 내려가 1993년에 잡지 부록으로 받은 서태지와 아이들 화보집이 아직 책장에 있고 화장실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생일선물로 받은 머리빗이 있다.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찾아낸,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물건은 연필깎기였다.
초등학교 입학 때, 그러니까 1986년에 샀으니 이제 25살이 된 물건이다.
아직도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내가 저 연필깎기를 사고 조금 후에 자동 연필깎기가 유행했었는데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던 그것을 새로 사지 않고 철제로 된 저것을 고수한 것이 다행이다 싶다. 조금 사이즈가 크긴 하지만 지금 보아도 그닥 촌스럽지 않다. 역시 클래식은 영원한 것인가..^^
그리고 초등학교 때 이모부께서 출장길에 사주신 색연필.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어른들은 색연필과 색볼펜, 사이펜을 선물로 주시곤 했다. 특히나 서울 친척집에 갔다가 받아오곤 했던 미술재료들은 외제가 많았는데, 상자 겉면에 쓰여진 다른 나라 글씨와 이국적인 사진들이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 시절 받았던 색연필이 아직도 저렇게 남아있다. 이모부께서 홍콩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사주신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 저 색연필은 made in JAPAN 인데다가 겉뚜껑의 사진은 영국의 이층버스이다. 이보다 더 이국적일 수 있을까. ㅎㅎㅎ 저 색연필을 받던 순간 목까지 차오르던 기쁨을 지금도 기억한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부분을 손으로 오므려 연필이 들어갈 구멍을 만든 후 연필을 구멍 안으로 끝까지 끼워 넣고 뻑뻑하게 돌아가는 손잡이를 돌려야하는데, 제법 잘 해 내었다. 연필깎기 속에 들어갔다가 한껏 뾰족해져서 나오는 연필이며 연필깎기 서랍통 속에 쌓이는 나무가루와 색색깔 색심 가루까지 신기해했다.
나의 어린시절이 세대를 넘어 나의 아이에게 닿는다.
윤우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음 날 등교를 준비하며 몇 자루의 연필을 저 연필깎기로 곱게 깎아 필통에 넣는 상상만 해도 흐뭇해진다. 그런데 아직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연필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몇 개월 단위로 신제품이 출시되어 새로운 소비를 강권하는 사회. 생산을 위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요상한 시대에 나는 윤우에게 어떤 물건을 물려줄 수 있을까. 또 윤우의 어떤 물건을 고이 간직해줄 수 있을까.
타샤 튜터, 그녀가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해서 어려운 인생을 살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삶 전체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녀의 인생이 평안해 보이는 건 그녀가 신념에 따르기 위해 본성을 억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 명의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이 어찌 고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계속 귀기울였고 상황을 탓하며 그것을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았다.
그녀가 대단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즐겼다는 것.
그녀의 자연주의적 삶은 분명 우리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녀가 선택한 인생은 소로우나 니어링와 같이 '의지과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취향'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미로 세금을 거부해서 철창 신세를 질 뻔 했던 소로우나 국가와 사회에 의한 감시와 통제, 억압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니어링의 투쟁적인 삶과는 달리 타샤의 자연 속 삶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윌북 |
이는 이 책의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혼자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당일 밤이 되어서야 볼 수 있으며 그 동안은 트리를 볼 수 없게 응접실에 둔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의 의미를 가족 간의 따뜻한 화합과 즐거움이 아니라 '온전해야 할 자신의 작품'으로 대하는 자세에서 그녀의 자아도취적 성향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면 1830년으로 가고 싶다는 그녀의 삶은 그래서 '자연주의적 삶'이라기 보다 '앤티크 라이프(Antique Life)'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옛 물건과 옛날 방식에 대한 그녀의 찬양을 읽고 있자니 과거를 그리워하고 지나가는 현재를 아쉬워하며 '증거'를 모으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추억에 얽매이는 편이라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를 수집해 놓았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며 찍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굳이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학창시절에는 '이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며 애늙은이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중학교 실과 시간에 만든 아기 옷과 미래의 집, 가족 구상도, 친구들과 수업 시간에 돌렸던 쪽지들과 짝사랑했던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남기고 가셨던 분필과 드링크 병까지, 수집한 품목도 가지가지였다. 친정집에 놓고 온 그 추억거리들이 지금은 엄마의 청소력으로 모두 소멸되어 버렸다. 전단지 뒷면에 그렸던 어린시절의 그림 한 박스도 언젠가 친정에 내려가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ㅠ.ㅜ 신문에 끼여오는 광고 전단지가 내 스케치북이었던 셈인데, 적나라한 러시아 무희들의 사진이 있던 술집 광고를 보고 놀랐던 게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
가장 아쉬운 것은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스누피 인형이다. 물건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왠일로 그 손때뭍은 인형만큼은 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남겨두었었는데, 지금은 없다. 조금만 더 오래 보관해서 지금 윤우 손에 그것이 들려졌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생각난 김에 내 물건 중 가장 오래된 물건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다.
모두가 버리라고 성화인 빨간 더플코트는 2002년 겨울에 산 것이고, 지금 윤우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CP 플레이어를 산 것이 1999년. 조금 더 내려가 1993년에 잡지 부록으로 받은 서태지와 아이들 화보집이 아직 책장에 있고 화장실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생일선물로 받은 머리빗이 있다.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찾아낸,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물건은 연필깎기였다.
초등학교 입학 때, 그러니까 1986년에 샀으니 이제 25살이 된 물건이다.
아직도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내가 저 연필깎기를 사고 조금 후에 자동 연필깎기가 유행했었는데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던 그것을 새로 사지 않고 철제로 된 저것을 고수한 것이 다행이다 싶다. 조금 사이즈가 크긴 하지만 지금 보아도 그닥 촌스럽지 않다. 역시 클래식은 영원한 것인가..^^
그리고 초등학교 때 이모부께서 출장길에 사주신 색연필.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어른들은 색연필과 색볼펜, 사이펜을 선물로 주시곤 했다. 특히나 서울 친척집에 갔다가 받아오곤 했던 미술재료들은 외제가 많았는데, 상자 겉면에 쓰여진 다른 나라 글씨와 이국적인 사진들이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 시절 받았던 색연필이 아직도 저렇게 남아있다. 이모부께서 홍콩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사주신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 저 색연필은 made in JAPAN 인데다가 겉뚜껑의 사진은 영국의 이층버스이다. 이보다 더 이국적일 수 있을까. ㅎㅎㅎ 저 색연필을 받던 순간 목까지 차오르던 기쁨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의 취미생활은 미뤄놓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부분을 손으로 오므려 연필이 들어갈 구멍을 만든 후 연필을 구멍 안으로 끝까지 끼워 넣고 뻑뻑하게 돌아가는 손잡이를 돌려야하는데, 제법 잘 해 내었다. 연필깎기 속에 들어갔다가 한껏 뾰족해져서 나오는 연필이며 연필깎기 서랍통 속에 쌓이는 나무가루와 색색깔 색심 가루까지 신기해했다.
나의 어린시절이 세대를 넘어 나의 아이에게 닿는다.
윤우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음 날 등교를 준비하며 몇 자루의 연필을 저 연필깎기로 곱게 깎아 필통에 넣는 상상만 해도 흐뭇해진다. 그런데 아직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연필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몇 개월 단위로 신제품이 출시되어 새로운 소비를 강권하는 사회. 생산을 위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요상한 시대에 나는 윤우에게 어떤 물건을 물려줄 수 있을까. 또 윤우의 어떤 물건을 고이 간직해줄 수 있을까.
타샤 튜터, 그녀가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해서 어려운 인생을 살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의 삶 전체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녀의 인생이 평안해 보이는 건 그녀가 신념에 따르기 위해 본성을 억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 명의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이 어찌 고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계속 귀기울였고 상황을 탓하며 그것을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았다.
그녀가 대단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즐겼다는 것.
'삶이 글이 될 때 > 읽고 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어나십시오! (0) | 2012.01.05 |
---|---|
2011년, 나를 만든 책들 (2) | 2012.01.03 |
<행복의 정복> - 러셀, 80년 전에 미래의 행복을 예언하다. (4) | 2011.11.11 |
<써니> - 결국 밥상을 못엎고 돈만 쥔 그녀들이 안타깝다. (2) | 2011.07.23 |
<엄마의 공책> - 닮고 싶은 그녀의 아름다운 선택 (2) | 2011.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