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미운 37개월 - 윤우의 성장 본문
1. WHY - man
"왜"가 습관처럼 입에 붙은 윤우는 딱히 호기심이 일지도 않으면서 이어달리기처럼 질문을 해대고는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가방은 왜 파란색이야?"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었나봐."
"왜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어?"
"그게 예뻐보였나봐."
"왜 그게 예뻐보여?"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 다 달라."
"왜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 달라?"
-_-+ 이 쯤 되면 이마에 빠직!하며 힘줄이 하나 잡힌다. 이건 궁금한 게 아니다. 그저 끝말잇기일 뿐.
심지어 자신이 이유를 말해놓고도 '왜?'를 붙일 때도 있다.
"위험하니까 왜 초록불에 건너야 돼?" (위험하니까!!!!!!!!!!!!!!!!!!!!!!!!!)
'왜?'를 붙일 수 없는 문장에도 떡하니 붙인다.
(병원에서 줬던 과자를 집에서 다시 먹으며) "이거 왜 병원에서 먹던 거야?" (그럼, 어디서 먹던 건데!!!!!!!!!!!!!!!!!!!!!!)
"왜 이건 책이야?"라는 근원적 질문을 할 때는 의도가 궁금하다. 정말 어원을 알려달라는 이야기일까? 그럴 때는 "그럼 윤우는 왜 윤우니?"라고 질문으로 넘기고는 한다.
게다가 윤우는 내가 싫어하는 대화 3종 세트를 모두 소화하고 있다. 의미없는 '왜?'질문, 들어놓고 "응?"이라며 한 번 더 말하게 하기. 했던 말 계속 또 하기. -_-;; 써 놓고 보니 술취한 사람 상대하는 것 같다. 윤우 아기 때도 어린 아이 키우는 일을 술주정뱅이 보살피는 거랑 비교한 적이 있는데, 도대체 저 술은 언제 깨는 걸까나.
2. 딴청 대마왕
무언가 시킬 때마다 '무조건' 일단 못한다고 버티고 본다. 100%다. 반응의 종류는 4가지 중 하나이다.
1) **하느라 못 해
급하게 핑계거리 만들며 못한단다. 진짜로 무언가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주변에 있는 물건 중 아무거나 집고서는 어이없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ex) 책 보느라 못해. 자동차 노느라 못해.
2) 힘들어서 못 해
현재 아이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해 줄 때, "너는 지금 어려서(힘이 약해서) 안 돼."라는 말 보다는 "좀 더 크면 할 수 있을 꺼야."라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집중해서 이야기해 주고자 노력했었다. 그런데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며 '약한 아기 입장'을 내세우는 저런 못된 버릇은 어디서 배운거냐! 평소에는 "이건 아기들은 못해?"라며 자기는 작은 형아라고 한껏 으쓰대놓고서는 말이다.
3) 못 들은 척 하기
아예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린다. 돌린 화제거리에 내가 말려들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데 3~4번쯤 넘어가면 질질 끌려가는 결론이 나는 것이 뻔한데도 계속 시도를 한다. -_-
4) 못해! 못해!
앞의 3가지 경우는 해야하는 걸 이해는 하고 있어서 자신도 자신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건 그냥 심통이 난거다. 이유도, 핑계도, 빠져나가려는 노력도 없다. 난 몰라, 배째고 누운 꼴. 열 불 난다.
3. 짜증 대마왕
영어 구문 중에 'Push one's button' 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 꼭지 돌도록 화나게 한다는 뜻인데, 특히나 개개인별로 민감한 상황이 다른데, 딱 그 상황을 찾아 건드렸을 때를 뜻하는 것 같다.
나한테는 아이의 짜증이 그렇다. 윤우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내 마음 속에 '딱'하고 '화내기 버튼'이 켜지는 소리가 들린다. 굉장히 민감하고 수위가 높아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건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친정 엄마가 화를 엄청 잘 내셔서 내가 항상 엄마 눈치를 보며 주눅들어 있었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짜증이 잘 나는 것도 성격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만난 엄마가 짜증이 '화내기 버튼'인 사람이니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나도 커 가는 거겠지.'라고 좋게 생각하려 애쓰고 있다.
윤우는 뭐든 하려다 안되면 벌컥 짜증섞인 소리를 낸다. 아이가 자신의 능력보다 수준이 높은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면 또 짜증섞인 소리를 듣게 될까봐 마음이 벌써 급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그 소리를 안들어보고자 내가 할 일이 뭔가 허둥지둥 찾아보는 거다. 아이가 미리 요구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은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뺏아서 척척 해주지도 못하고 주위만 맴돌며 조급해지는 것이다. 에구야...
요즈음 윤우는 짜증이 난다는 걸 "자꾸 그래...계속 그래..."라고 표현한다. 불편하고 싫은 감정이 계속되니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데 엄마도 아직 그 수준이 안 되니 답답하구나.
4. 능청 대마왕
밖에 나갔다 와서 손을 씻으라고 하면 "손은~ 안 씻어도~ 됩니다!"라며 괜한 능청을 떤다. 정리를 하라고 하면 "정리는~ 안 해도~ 되요!"라고 하고, 이 닦자고 하면 "이는~ 안 닦아도~ 되지요!"라고 한다. 이 문장을 위한 리듬도 따로 존재한다.
때로는 이렇게 변형되기도 한다. "손 씻는 건 절대로 안 되~ 그런 건 절~대! 안 되는 거야!"
입으로만 하는 반항이라 애교로 봐주고 있지만, 이제 아기의 단계를 넘어 '남자 어린이'로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ㅂ-
5. 촐싹 대마왕
빙의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몸을 흐느적거리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까불기 시작한 건 사실 꽤 되었는데, 요즈음 부쩍 심해졌다. 그런데 앞으로 이게 점점 더 심해질꺼라 생각하니 우울하다. ㅠ.ㅜ 버스 안에서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던 그 'sentimental boy'가 진짜 저 아이가 맞나 싶다.
남자아이들의 전매특허인 '촐싹 까불'은 사실 내가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웃음도 안 나오는 녀석들의 '방의 상태'에 가히 동참하여 나도 혼을 잠시 빼 놓는 것이 정답일 것이나, 이건 내 인생 통 틀어 해보지도, 해볼 생각도,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남자아이 엄마'로 내가 빙의되길 바래본다. T-T
6. 삐짐 대마왕
이제 삐지기도 한다. 내가 훈계를 시작하려 하면 저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난 아무 얘기도 안 할꺼야!"라며 샐쭉해진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나에게 '네'라는 고분고분한 대답은 기대하지 마세요. 내 기분이 지금 무지 나쁘거든요.' 라는 표시인거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도 저게 딱 내 모습이어서 기운이 쭈욱 빠진다. 윤우에게 화가 났을 때 "지금은 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엄마가 화가 많이 났어."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배운건지 아니면 현수에게 삐져 있는 걸 보고 배운건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들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유치하게 귀를 막고 "아아아아아아~"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무슨 말을 하든 흘려들으며 무시하는 경우는 많았다. 반성한다. ㅠ.ㅜ
그래도 희망적인건 저렇게 말을 해도 계속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얼굴로 바라보니 조금 있다가 "네~"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는 거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건 '바람'이 아니라 '해님'인 모양이다.
7. 사교성 제로
윤우에게 또래 친구란 아직 '같이 놀 상대'가 아닌 것 같다. 내 놀이를 방해하는 훼방꾼이나 지도, 교정이 필요한 어리숙한 아이들 정도?
만나는 또래에게 윤우가 하는 말이라고는 "그게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하는 거야." "그건 너무 많잖아!" "뛰어가면 안 돼."등등 잔소리뿐이다. 결국 다 엄마 말투이니 나한테 매운 거다 싶다가도, 그럼 다른 아이들은 엄마한테 저런 얘기 평생 안 듣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자신도 잘하지 못하면서 남의 허점에만 주목하는 겐지. 당신 먼저 잘하세요!
8. 한글 & 그리기 & 가위질
그림책을 보며 글자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은 한 두달 쯤 전부터였던 것 같다. 물어볼 때마다 대답해주는 것으로 끝내고 별다른 한글 교육은 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펜으로 선 따라 그리기를 참 좋아하길래 마카펜으로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한글책을 사주었다. 몇 주 동안 여기에 꽂혀서 열심히 하더니 첫 글자를 썼다.
요즈음 아이들은 예전처럼 자기 이름 석자로 출발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이돌 시대~~~ -ㅂ-/ 다른 글자들은 좌우반전이 진하게 되었지만, '타요'만은 또렷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자기주도학습의 힘!
그림의 주된 소재는 여전히 자동차이다. 예전보다 디테일이 살아난 윤우의 자동차들.
가장 밑의 3-1번 버스는 도서관으로 갈 때마다 타는 노란색 마을 버스이다. 지금처럼만 계속 도서관을 좋아해주면 좋겠다.
윤우가 처음 자동차 바퀴를 제대로 그렸을 때의 그림이다. 이 그림 뒤에는 자동차 바퀴들이 다시 위의 그림처럼 동그라미로 돌아갔는데, 이 때는 타이어와 휠을 일부러 구분하여 그렸었다. 휠의 모양이 자동차마다 다르다는 걸 꽤 재미있어 했는데 이걸 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뭔가 그리고 벽에 붙여 놓겠다며 메모장에 열심히 그린 그림. 정작 화가는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긴 한데, 그린 것을 보니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는 것 같다. 꿈보다 해몽. ^^
가위질에도 재미를 붙였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되지 않아 짜증을 부릴 때가 많다. 유아용 안전가위는 제대로 잘리지도 않고 계속 종이가 씹히기만 해서 마트에서 다시 유아, 어린이용으로 가위를 2개나 더 사왔는데, 정말 잘 사용하는건 윤우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어른용 안전가위. -ㅂ- 유아용 핑킹가위는 다행히도 제법 잘 든다. 지그재그 잘리는 맛을 살려 뾰족한 이빨이 있는 공룡을 오려 주었더니 한참을 가지고 놀았다.
9. 이불에 오줌을 싸다.
10월 26일 오후! 낮잠을 자던 윤우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헐레벌떡 방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못 볼 걸 본 것 같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놀랐는데 바지를 만져보니 축축했다. 처음으로 이부자리에 실례를 한 것이다!
이제까지 오줌을 참다가 싼 적은 몇 번 있지만 자다가 싼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의 첫 경험은 그게 무엇이든 엄마에게는 추억이다. 그래서 찰칵! ^^
처음에는 씩씩거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자식이지만 밉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내 속에 화가 잔뜩 쌓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윤우의 일상을 돌이켜보니 다시 마음이 녹는다. 그래, 부처같은 엄마일 수 없다면 언젠가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파도타기 엄마라도 되어보자.
며칠 전 살림언니가 시어머님와 아이아빠와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 내가 지금 아이에게 느끼는 속타는 감정이 지금 어머님 심정일 것 같다.'라고 했다. 부모 말 안 듣는 자식 바라보는 심정이, 그 정도야 다를 수 있어도 어짜피 같은 뿌리라는 것이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윤우와 나의 갈등은. 길고 길 앞으로의 여정에서 마음 속에 '그 버튼'이 켜지더라도 이 아이가 내게 준 행복을 떠올리며 파도를 타 보자. 그렇게 나도 크고 윤우도 크다 보면 파도가 잔잔해지는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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