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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2011년을 마치고 2012년을 시작하며...

고래의노래 2012. 1. 1. 07:31
아이를 재우다 눈을 뜨고 문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시간은 11시이다. 하마터면 2012년에 깨어날 뻔했다. -0- 윤우아빠가 윤우와 함께 새우깡을 먹다가 '안주의 유혹'에 맥주 한 캔을 흡입하더니 곯아떨어져 버려 나를 깨울 수가 없었던 거다. 그저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오는 것 뿐인데 해넘이라는 건 사람 마음을 참 다르게 만든다. 부랴부랴 샤워을 하고 깨끗한 몸(!ㅋㅋ)으로 새해를 기다렸다.

2011년을 돌아보니 '결국엔 좋았던 일들'만 떠오른다. 힘들고 지치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좋은 결과를 위한 과정이었을 뿐 아픔으로만 남은 상처는 없었다.
내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로 여기는 것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 안에서  그들이 나로 인해 힘들지 않기를 바라고 나 또한 그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느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특히 윤우를 통해서 '의식적인 사랑'의 첫단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윤우는 마음 속 상처와 욕구를 숨기지 않았다. 수많은 육아서를 비롯해서 <사랑의 기술>을 보며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지만 이제까지는 머리 속으로만 이해했던 '노력하는 사랑'을 윤우의 고백들 덕분에 행동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같았던 친정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애증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걸 느꼈다.
나는 사랑을 다시 배웠고 걸음마를 떼듯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 윤우와의 사랑을 다시 그리다. http://whalesong.tistory.com/409   http://whalesong.tistory.com/417
- 남편을 향한 사랑을 반성하다. http://whalesong.tistory.com/404 
- 친정 부모님을 다시 따뜻하게 바라보며. http://whalesong.tistory.com/421

그 과정에서 답답하고 힘든 심정을 블로그를 통해 토해 내었다. 본래 2007년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했던 블로그였다. 2008년 임신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일기형식으로 다시 끄적거리기 시작하다가 윤우를 낳고 잊고 싶지 않은 육아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육아서와 아이의 발달 상황과 같이 지극히 정보차원의 글들만 쓰다가 올해 들어 처음 가족 사진까지 올리면서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확성기대고 떠드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그 개방성때문에 나는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 가족의 사진이며 내 사진을 올리는 것도 꺼려했었다. 무엇이 날 그렇게 꽁꽁 가두고 있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빗장이 한 번 풀리자 끙끙 대던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 나한테서 멀어져 흘러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블로그를 쓰면서 생각도 감정도 정리가 되고 나 스스로 치유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이렇게 풀어놓은 것은 다름아닌 블로그 언니들이다. 올해 나는 내 생에 손꼽히는 아주 귀한 인연들을 얻게 되었는데, 살림언니와 새댁언니가 그들이다.
오소희님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따라 내가 살림언니의 블로그로 도둑방문을 했던 게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클릭을 유도했던 언니의 덧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언니의 다른 글들처럼 진솔하고 따뜻한, 그래서 '유혹적이고 끈적한'(^^) 글이었을 것이다. 덧글로만 인사를 나누다가 언니가 성남중앙도서관에 가끔 들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난 어렵사리 용기를 냈다. '괜찮으시면 만날까요? 혹시 부담되시면 거절하셔도 물론 괜찮구요...'라는 소심한 쪽지를 보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지극히 부담스러워 하는 나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그렇게 언니를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게 2011년 3월 8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림언니를 통해 줄줄이 이어진 인연들. 새댁언니와 토토언니.
놀랍게도 '대학 동문이니 만나보면 더 좋을 거'라며 소개받은 새댁언니는 인문 10반 한 학년 선배언니로, 난 그녀의 얼굴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만나야 할 인연은 이렇게 돌고 돌아 닿기도 하나보다. ^^


이 사진 속 빨간옷 언니들이 블로그 언니들이다. 둘째 아기를 안은 언니가 새댁언니이고 그 옆에서 맛있게 설렁탕을 먹는 사람이 살림언니. 우리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한살림' 잔치에서 아이와 남편들까지 대동하고 만났었다. 남편들끼리는 첫 만남이라 다소 어색했지만 좋은 날 좋은 곳에서 모두가 함께하니 우리는 마냥 웃음만 나왔다.

언니들은 삶 속에서 '나'와 '세상', '자연'을 분리하지 않는다.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일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 힘들게 산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언니들은 '독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비싼 교구와 전집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와 바르고 강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니들과 만나면 아이에게 무엇을 사줄까가 아니라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육아와 살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위로받는다.
2011년 내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새해 목표 중 가장 간절했던 목표가 '엄마 모임 만들기'였다. 아이 교육만 걱정하는 엄마가 아니라, 제대로 중심이 선 사람이 됨으로써 제대로 된 엄마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 작은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블로그 언니들을 만나 난 그 꿈을 이루었다. 오래오래 곁에 머물며 언니들의 삶의 향기에 나도 물들고 싶다.

2011년에 좋았던 일 중 또 하나는 내가 주부로서의 역할에 서서히 눈을 뜨고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2년이면 전업주부 5년차가 된다. 회사생활이었다면 이미 신입사원 딱지 뗀지는 오래고 대리 2년차는 되었음직한 시간이다. 이 때 쯤되면 보통 일의 감각을 익히고 창조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해석하기도 한다.  
요리 혐오증을 벗어나고자 1년 목표로 시작한 <밥.먹.자> 프로젝트(http://whalesong.tistory.com/362)는 이제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는데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인다.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내 놓을만한 나물반찬들과 밑반찬들의 레서피가 슬슬 몸에 익기 시작했고, 로테이션되는 국과 급할 때 하기 좋은 각종 부침개와 전 요리에도 조금씩 같이 생기고 있다.


지난 주 수요일 아침 밥상. 깍두기만 빼고는 전부 내 손으로 차린 음식들이다. (예전에는 한 두가지 빼고 거의 시댁이나 친정 반찬들었다. -_-;;;) 느타리버섯전과 애호박볶음, 시레기나물, 포항초무침, 불고기, 데친양배추와 쌈장.
거창한 것은 없지만 내 손으로 가족들의 음식을 만든다는 뿌듯함이 있다.

청소와 정리에도 조금씩 감각이 생기고 있다. (http://whalesong.tistory.com/399) 그 감각이라는 것이 뽀얗게 쌓인 먼지를 두고 보지 않는다던지, 수채구멍을 매일 비우거나 저녁 설거지를 꼭 하고 잠드는 등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일단 기본 마음자세를 다지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 그야말로 가족의 위생과 건강을 책임진다는, 살림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물론이고 살림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내 손으로 살아간다.'는 아주 중요한 의미라는 점을 깨달았다. 자립(自立)하는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제 손으로 밥 해먹고 집 돌보며 살 수 있느냐'는 기본적인 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그 방향을 우리에게도, 자연에게도 이로운 쪽으로 틀어 '자연주의 살림'으로 잘 꾸려나갈 수 있느냐가 심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 (http://whalesong.tistory.com/414)

2011년 목표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내 권리에 당당해지기'
돈을 내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미심쩍은 점이나 궁금한 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죽전 카페골목의 한 레스토랑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나왔음에도 그 거리의 럭셔리함에 짓눌려 자칫 촌스럽게 보일까봐 별다른 항의도 하지 않고 결재를 하고 나온 적도 있다. 다행히 남편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다시 레스토랑으로 찾아가 재결재를 하긴 했지만 항상 뭔가에 주눅 들어 있는 나의 태도에 스스로 단단히 화가 나서 고쳐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내 다짐을 시험받는 상황이 연초부터 발생했었다. 윤우가 인중을 뾰족한 침대 모서리에 찍힌 것이다. 해당 가구회사에 클레임을 걸고 AS를 요구했지만 한 번에 거절당했다. 이것은 명백히 가구 디자인이 잘못된 것이며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이런 디자인이 다시 나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해결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아고라 및 각종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고 소비자안전센터에 청원을 넣어서 결국 내가 원하는 AS를 받아내었다. (http://whalesong.tistory.com/339) 왜 나는 이제까지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하지 않은걸까. 게다가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 권리 뿐 아니라 시스템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2012년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일단 3월부터 윤우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등원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내 생활도 많이 바뀌게 될 것 같다. 일단 아직 엄마와의 이별준비가 안 된 윤우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큰 숙제로 기다리고 있다. 공동육아에 대한 내 기대는 사실 아이의 교육과 보살핌에 대한 것보다는 교육철학이 맞는 엄마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크다. 그 안에서 내가 모든 아이를 구별없이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

2011년의 목표 중 하나가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해지기였다면 2012년에는 내 안의 사랑을 밖으로 확장할 수 있으면 한다. 내가 스스로에게 안타까워하는 점 중 하나가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관심과 간섭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해왔는데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따뜻한 애정까지도 식어버리게 된 것 같다. 게다가 남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도 이런 이야기는 별로 관심있어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먼저 입을 닫아버리거나 세세한 설명을 생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위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즈음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거는 낯선 사람에게 나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곤 한다.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을 받으면 짧게 대답을 하고 다시는 다른 질문이 이어지지 않게 방어적인 분위기를 만들고는 했는데, 이제 내가 상대방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고 내 상황에 대한 부수적인 이야기까지 곁들여보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어색하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인데 행동이 있다보면 마음도 따라오리라 믿고 있다. 
그렇게 넓어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새해에는 환경, 여성, 교육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한살림이나 생협, 대안교육 모임을 알아 보아야겠다.

그 밖에 윤우의 등하원을 위해서 자동차 운전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윤우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동안 헬쓰를 다닐 생각이다. 이제껏 회사 다니느라, 아이 키우느라 소홀히 했던 내 건강을 되돌리는 일년이 되었으면 한다. 내 건강이 어느 정도 돌아오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둘째를 가질 생각이다. 건강한 아기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와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 그림 속에서 옛날의 희열을 다시 찾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이날 선물을 목표로 윤우를 위한 그림책도 꼭 한권쯤 그리고 싶다. 만약에 그림 속에서 다시 내 길을 찾게 된다면...그 때는 다시는 그 끈을 잡고 놓지 않으리라.

한 해를 돌아보며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면 그 해는 성공한 한 해일 것이다. 2011년은 나에게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많이 반성하고 돌아보면서 결국은 2010년과는 다른 내가 될 수 있었다.
2012년에 성장하고 변할 윤우도 기대되고 그 곁에서 덩달아 함께 자랄 나 자신도 기대가 된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가슴에 품었던 딱딱하고 경직된 목표들을 내려놓고 내가 나아가야 될 방향만 제대로 잡아두고자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예상지 못할 하루하루 일상들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 사뿐사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