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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우리 집의 12월과 크리스마스

고래의노래 2011. 12. 27. 01:09
12월은 온전히 크리스마스를 위한 한 달이다. 밤하늘의 별이 모두 땅 위에 내려 앉은듯 온 세상이 반짝이 전구로 빛나는 시기. 연말연시의 분위기라는 건 이제 크리스마스와 한묶음으로 녹아버려서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집안에 트리 하나쯤은 장식하게 된다. ^^ 

12월의 1일,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으로 우리집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매우 좋아하는 나는 혼자 자취를 할 때도 12월이 되면 반짝이 전구로 원룸을 장식하곤 했다. 그 때 사두었던 반짝이 꼬마전구들이 매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집이 좁아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을 공간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진한 와인색 에어컨에 꼬마전구들로 트리 모양을 만들었다. 에어컨의 특성상 집 안쪽으로 몸을 틀고 있기 때문에 저 곳에 장식을 해놓으니 온 집안이 화사해졌다. 윤우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고른 분홍 방울 장식을 전구에 매달고 시댁에서 받아온 산타 모자를 트리 꼭대기에(에어컨 꼭대기에;;)씌워 놓았더니 꽤 그럴 듯 하다. 밤에 불을 끄고 앉아 반짝이는 전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다.

올해 12월이 더 의미있는 건 윤우와 내가 보내는 마지막 온전한 자유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을날의 고백 사건 이후로 나는 이번 겨울만큼은 윤우에게 어떤 스케줄도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우린 생각만 해도 아득한(^^;;;) 방콕 생활이 예정되어 있었다.
집에서 아이와 할 수 있는 미술활동들을 생각하다가 '솔방울로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에 도전해 보았다. 이것을 위해서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을 때 윤우와 소나무 아래에서 솔방울을 잔뜩 주워 왔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동그란 모양의 스트로폼에 호랑가시나무잎 모양으로 자른 초록 색지를 붙이고 글루건으로 솔방울과 반짝이 술이 붙어있는 폼폼을 붙여서 눈깜짝할 사이에 완성! 동그란 리스판이 튀는 하얀색인 게 조금 아쉽지만, 눈이 쌓여서 그런거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

남자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크리스마스 필수코스라는 '밀레니엄 힐튼의 크리스마스 자선 기차'를 드디어 구경했다.
서울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부터 힐튼까지 걸어가는데 바람이 너무 매서웠다. ㅠ.ㅜ '일부러 찾아갈 볼 정도는 아니지만 지나다가 들르기 좋은'이라는 블로그 평도 보았던 터라 추운 날 고생만 하다가 가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커~~~어다란 트리를 보자 "이~야"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주위로 빙 둘러쳐진 기차마을은 너무나 섬세하고 예뻤다. 게다가 움직이는 모형기차들이라니! 아이들이 어찌 안 좋아하겠는가.

기차들은 2대가 1개조를 이루는데 한 대가 한바퀴를 돌고 들어오면 다른 한 대가 출발한다. 전체 기차 수는 10~15대쯤 되는 것 같다. 화물열차, 증기열차, 고속열차 등 기차 종류도 가지가지이고 각 기차마다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고속열차는 실제로 다른 열차들보다 훨씬 빠르다. 저절로 움직이는 장난감 기차에 눈이 휘둥그레진 윤우는 이 곳에서 1시간을 머물더니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유모차 안에서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잠이 들었다. 윤우가 제 시간에 잠들면 호텔 커피숍까지 코스에 넣으려던 내 계획이 틀어져 조금 아쉬웠지만 정류장 옆의 투썸 플레이스에서 오랫만에 남편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준비한 것들 중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들은 그 밖에도 많았다.

화이트 보드며 스케치북, 썼다 지우는 보드북에 하루에도 몇번씩 그림을 그리는 윤우를 보면서 윤우와 직접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서 윤우를 예뻐하는 세차장 아저씨와 양가 부모님께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서 부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테고 말이다.
그러나 멍석을 깔아주면 누구든 어색한 법. 카드 용지를 접어서 내밀며 아무 그림이나 그려보라고 하자 예전에 그렸던 것과는 달리 아주 허술하고 희미하게 자동차를 그리더니 다 그렸다는 것이다. 조금 더 그려보라고 압박을 넣으니 이내 싫다며 도망간다. 구슬리다가 삐진 척도 하고 다시 압박하기도 하다가 포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방법이 한참 잘 못되었지 싶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어떤 건지 본 적도 없는 윤우에게는 카드 만들자는 말이 뜬구름처럼 들렸을 것이다. 일단 내가 바탕이 되는 기본 그림을 그려주고 그 옆에 함께 그림을 그리도록 하거나 그려놓았던 그림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오려서 카드에 붙이라고 하거나 스티커로 장식을 하라고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정에 '연하장'으로 다시 한 번 윤우와 도전해 봐야겠다. ^^

윤우와 성당을 구경하는 계획도 세웠는데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하면 떠올리는 '산타클로스와 선물' 말고 진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윤우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성당에 가면 그러한 의미를 확실히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1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아 하늘에 계신 누군가에게 기도하며 내 지친 마음을 털어놓고 새로운 다짐에 대한 격려도 받고 싶었다.
마침 탄천을 끼고 조금만 걸어가면 성당이 있어서 윤우와 탄천을 산책하다가 자연스럽게 성당으로 들어가는 걸로 계획을 세웠는데...너무 추웠다. -_-;;; 계속되는 추위에 탄천 산책은 엄두도 못내다가 중앙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어둑해졌지만 큰 맘먹고 성당 앞 정류장에서 윤우와 함께 내렸다.
도서관 앞에 있던 교회는 반짝이 전구와 커다란 별로 장식을 해 놓아서 윤우의 눈을 사로잡았었는데 성당이라 그런지 성당 외벽에 장식이 전혀 없고 내부는 심지어 깜깜하기까지 했다. 놀이공원에서의 트라우마(!)때문에 깜깜한 것에 대한 공포가 생긴 윤우를 화장실 가자고 달래어 겨우 성당 안에 들어갔는데, 볼 일을 보고 나와 본당을 찾아가니 이미 문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윤우는 깜깜해서 싫다며 계속 나가자고 하고;;;; 결국 다시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침 예수님 초상화가 있길래 "이 분이 예수님이야. 크리스마스는 이 분이 태어난 생일인거야." 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예수님이 누군데?"라고 묻길래 "음...옛날에 살던 분인데,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불쌍한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신 훌륭한 분이야."라고 버벅거리며 설명해주었다. 종교적인 신성(神性) 의미를 배제하고 설명을 하려니 의외로 많이 어려웠다. 다음번에 가게 되면 윤우에게 해 줄 이야기를 좀 더 확실하게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은 윤우의 크리스마스 선물.
세 돌즈음부터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을까 싶어서 어떤 선물을 주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산타 할아버지한테 어떤 선물 받고 싶은지 얼른 기도해."라며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선물로 주지만 난 윤우에게 '선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선물 자체보다 '선물을 준비한 상대방의 정성에 감사한다'는 선물 본래의 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내 욕구의 충족은 잠시 미뤄둬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야 상대방에게 직접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세상살이의 감성을 알아가는 어린아이들에게 그건 아직 이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내가 윤우의 마음을 묻지도 않고 윤우도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 되었다. 나는 내심, '산타 할아버지 안 기다리나? 책에서 본 산타클로스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건너뛸 수 있는건가 싶어서 나태해져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이러는거다. "이제 산타할아버지 오신데?" @0@ 이 녀석,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윤우에게 사줄까 고민하던 '물감 짜진 팔레트'를 사려고 이브날 저녁에 온 화방과 문구점, 교보문고를 돌아다녔다. 이미 택배로 선물을 받기에는 늦었기 때문에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근데...없다! 없어!!! 패닉 상태에 빠진 나는 머리를 쥐어짜다가 결국 교보에서 책 한권, 서현역 가판대에서 장갑을 샀다. 
집으로 와서 윤우를 재우는 사이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새벽 2시! 부랴부랴 선물들을 포장했다. '이제부터 십여년간 우리는 윤우의 산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물을 어디에 놓아둘까 고민하다가 전통식으로 머리맡에 두기로 했다. 곱게 싼 선물을 윤우의 머리맡에 두고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우리 엄마, 아빠의 마음도 이랬겠지 싶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뜯어본 윤우는 조금은 실망한 것 같았다. '뜻밖의 선물'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선물의 의미를 가르치고자 했지만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지 않으니 내 마음도 좋지는 않았다. ;;; 내년부터는 조금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장갑을 끼고 나가라고 하는데 굳이 예전 장갑을 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눈사람 만들려면
눈에 젖기 않는 새 장갑을 끼어야 한다고 논리로 설득하고, 장갑의 끈을 보여주며 멋지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겨우 끼울 수 있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눈사람과 찰칵! 눈사람들도 아빠랑 윤우처럼 눈이 쳐졌구나. ㅎㅎ

윤우와 남편이 밖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사이 나는 김밥을 말고 있었다. 집들이 겸 크리스마스 파티로 혜원이네 집에서 버찌씨들이 모이기로 한 것이다. 한 팀당 하나의 요리를 가져오는 포트락(potluck) 파티여서 나는 김밥과 찐 감자를 싸가기로 했다.
달걀지단과 데친 포항초, 단무지, 당근볶음, 참치 마요네즈, 소고기고추장볶음, 깻잎이 들어간 김밥. 예전모임에 한 번 싸보고 지금이 두번째인데, 모임에 김밥을 싸들고 가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일단 김밥은 대충 말아도 '김밥맛'이 나서 좋다. 손맛이나 능숙함보다는 재료맛이고 그 재료들조차 별다른 요리실력이 필요없는 기본요리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김밥을 쌌다고 하면 다들 "어쩜 그리 번거로운 것을..."이라며 정성을 높게 사 준다. 사실 김밥이나 다른 요리나 나에게는 모든 요리가 번잡하니 공을 인정받는 쪽에 더 마음이 기우는 것이 당연. ㅎㅎㅎ 이번 김밥은 다행히 맛도 꽤 괘찮았다.

버찌씨과 그 짝꿍들, 그리고 아기들이 다 같이 모여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노래를 불렀다. 징글벨을 부를까 했으나 촛불 끄기에는 역시 생일 노래 만한 것이 없으니. ^^
이번 모임에는 특별하게 영주와 내가 게임을 준비했다. 버찌씨 관련 스피드 게임과 윷놀이를 해서 경품을 증정하기로 한 것이다. 1등은 무농약 쌀 10kg 한가마니, 2등은 유기농 불고기살과 유기농 불고기 양념, 3등은 주먹밥 만들기 세트, 4등은 블루베리잼이었다.  버찌씨 관련 문제는 총 6문제로 남편들만 맞추도록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흥미진지했다. 스피드 게임에서는 영주네와 혜원이네만 점수를 땄는데 윷놀이에서 우리팀이 혜원이네를 역전해서 유기농 불고기를 득템할 수 있었다. >ㅂ<b 가장 먼 길을 달려온 선희네에게 블루베리잼이 돌아갔는데 추기경은 연신 블루베리잼의 고급스러움이 주먹밥 세트보다 한 수 위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ㅋㅋ

이렇게 두근거렸던 12월이 지나갔다.
이벤트들이 풍성하기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윤우가 아직은 어렸고, 그에 비해 내 욕심은 조금 과했다. ;;
이제 해가 갈수록 나보다 윤우가 크리스마스를 더 기대하고 12월의 이벤트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때 함께 흥분할 수 있도록 두근거리는 감성을 유지할 것! 이것이 나에게 남은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