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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씨 대하 파티! - 사실 대하따윈 상관없다. 본문

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버찌씨 대하 파티! - 사실 대하따윈 상관없다.

고래의노래 2011. 11. 22. 00:24
10월의 세째주 주말, 당진에 있는 선희네에서 버찌씨가 다들 모였다. 대하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요즈음 버찌씨들과 만나면 헤어지기 전에 꼭 다음 만남 꺼리를 만들곤 했는데, 지난 번 여름에 유진이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다들 전주에 내려갔을 때 "가을이 되면 대하를 먹으러 오라!"던 추기경의 말을 아무도 흘려듣지 않았던 것이다. ㅎㅎ 선희네는 대하철만 되면 지인들을 불러 대하를 사주느라 바빠진다. 딱히 가을이 아니더라도 당진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선희와 추기경(이름이 김수환이어서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은 삽교천 근처 시장에서 싱싱한 회며 꽃게를 한 바구니 사다가 우리를 푸짐하게 대접해 주고는 했다. 

게다가 이 날은 선희네가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때였다. 집들이라는 그럴 듯한 핑계까지 추가되었는데 집주인들은 인심 좋게도 모두 하룻밤 머물다 가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그야말로 어딘가로 '놀러온' 기분이 되어 한껏 들떠 버렸다.

이제 만난 적도 여러 번인데, 아직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버찌씨의 남자 짝꿍들. 남자들 사이사이에 저 벌어진 틈을 보라. 간격이 일정하기도 하여라. ㅋㅋ 현수는 아예 윤우랑 베란다에 나가 있고. ^^
하긴 우정이 질긴 여자들을 만나 여기저기 모임에 끌려다니는 처지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남자들이다. 오랫동안 재탕될 만한 추억들이 이제서야 쌓이고 있는 중일테니 언젠가는 남자짝꿍들이 자기들끼리 약속을 만들고 한 잔 할 날도 오지 않을까.  

선희는 놀랍게도 직접 담근 간장 게장을 선보였다! 소문난 간장 게장 맛집보다 200배는 더 맛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어지는 선희의 고백을 들어보니...맛의 핵심인 게장국물은 어머님이 만들어서 보내주셨다고..ㅋㅋㅋ
게 손질하고 간장 부었다가 다시 졸이고 붓는 일도 손맛이라며 우리는 열심히 치켜세웠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중학교 시절의 촌티나는 단발머리 소녀를 생각하면 다 만들어진 간장이라도 게에 부은 게 대단하다. 암~^^

어색한 남자들에게는 역시 술을 쥐어줘야 얘기가 풀린다.
술을 따르고 있는 쪽이 선희의 짝꿍인 추기경이다. 요즈음 선희의 가장 큰 불만은 추기경이 회사 술자리로 퇴근이 자주 늦는다는 점이다. 친정, 시댁의 도움없이 홀로 아이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데다 주변에 오래 알고 지낸 친구도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엄마들은 남편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 터질듯한 답답함을 잘 알기에 난 참 안타까웠다.

우리에게 선희는 '결혼했다' 보다 '시집갔다'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와의 삶의 터전이 아예 바뀌었기 때문이다. 추기경은 아무 인연이 없던 당진에서 선희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게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 준 사람이다. 우리를 대할 때의 정성어린 모습을 보면 선희에게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아내를 곱게 생각하지 않고는 그 친구들에게 저리 잘 할 수 없을테니. 그래서 선희의 푸념에 미워지다가도 다시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

선희네 아기인 지성이와 윤우는 만 2년 정도의 터울이 진다. 미리 준비해간 윤우의 미니카에 지성이가 관심을 보이자 윤우가 선뜻 하나를 빌려주었다. 빌려주는 것 하나는 정말 잘한다. 그런데 뒤 이은 잔소리.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애기 맘대로 하게 놔 둬! >ㅁ<

막히는 도로에서 고생했던 혜원이가 늦게 도착해서 드디어 버찌씨가 모두 모였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영주가 사진 속에 나를 넣어주는구나. 고맙다. ^^ ㅎㅎ 점심상을 치우고 아이들을 남자들에게 맡긴 후 우리들끼리 식탁에 앉았다. 학교 앞 패스트푸드 점 '달라스'에서의 분식 파티에서 우리가 낳은 아이의 돌잔치까지, 한 상 가득 차리고 동그랗게 둘러앉는 일을 우리는 셀 수도 없이 반복해 왔었다. 그 한 끼, 한 끼가 쌓여 세월이 흐르고 여중생들은 이렇게 자랐다. 식탁에 놓인 맥주병이 이제 우리가 어른임을 말해 준다.  

요즈음 퍼즐에 빠진 윤우가 작은 방에서 발견한 퍼즐. 조각이 엄청나게 작아서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른 셋이 달려들었는데도 완성을 못 함. 어른 둘 고민하게 해 놓고 자기는 자동차 놀고 있는 모습 좀 보라지. ;;;;
무뚝뚝함이 대세인 버찌씨 이모들 중 유독 영주이모만은 윤우에게 늘 적극적이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만나면 오버하면서 놀아주고, 결정적으로(!!!) 크리스피 도너츠를 박스채로 사다 주었다. ㅋㅋㅋ 이렇게 극진한 애정공세에 슬슬 마음이 녹은 윤우는 이제 버찌씨 이모들 중 영주 이모를 가장 좋아한다.(실제로 영주이모가 가장 좋다고 말을 했다. 영주이모는 감격으로 녹아버림. ^^) 다음 날 아침에는 일어나자 마자 영주이모를 깨우며 퍼즐하자고 하기도...ㅋㅋ 이 때만큼은 영주도 괴로워하더구만. 

밥을 먹고 조금 쉰 뒤에 대하를 사러 다들 삽교천으로 향했다. 노을을 본 게 얼마만인지... 학창시절때만 해도 부엌창문 밖으로 '장엄한 해의 퇴장'을 홀로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높다란 아파트 숲에 가려 노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좁은 시야와 트인 시야라는 건 그 이중적인 의미 그대로 작용한다. 좁은 아파트 숲의 시야에 생각과 마음의 시야까지 좁아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윤우에게 진짜 노을을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관심을 끌어 보았지만 천방지축 4살의 마음은 오로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것 뿐이었다. ^^;

영주네는 이제 다음 년 쯤 결혼을 준비한다고 한다. 어느 모임에 있던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재간동이 영주.
짝꿍인 승모씨도 그런 영주를 닮아 그런지 남자들 중에는 나이로는 가장 맏형인데, 재간동이시다. 예전 지성이 돌잔치 때의 엉덩이 춤만 봐도 알 수 있다!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영주는 걱정이 많은 것 같다. 결혼 후에는 전혀 연고가 없는 수원에 신혼집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 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랑 선희가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많이 힘들어 했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더 겁을 먹은 것 같다. 그런데 영주는 낯선 상황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래서 사실 난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데...^^;;   

혜원이네 커플. 혜원이네는 재원이가 일요일에 근무가 있다고 해서 원래 하룻밤 자지 못하고 늦은 저녁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오는 길이 너무 막히는 바람에 시작부터 늦어져서 하룻밤 머물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덕분에 우리는 버찌씨가 다 모이는 완벽한 밤을 즐길 수 있었다.

혜원이를 생각하면 짝사랑의 기분이 든다. 워낙에 친구들에게 온갖 정성과 관심을 쏟는 내 입장에서는 모든 친구들에게 약간씩의 서운함은 있게 마련이다. ^^;; 그래도 이 친구에게 더 그런 감정이 드는 건, 혜원이가 우리의 모임을 다른 일보다 많이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 근래 있었던 버찌씨 모임에 혜원이는 거의 불참했었고,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닥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거야 일이 꼬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조금의 푸념도 보이지 않는 그 깔끔함이 난 너무나 서운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감정을 과하게 흘리지 않는 깔끔함은 혜원이의 본래 성격이니 표현을 안 한 것일 테고, 혹시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도 탓할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의 문제이다. 버찌씨들끼리만 만나 술 한잔 하는 자리가 생긴다면 이 짝사랑의 감정을 고백해볼 수 있겠지. ^^; 

대하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아직 대하 하나 들고 뜯을만한 나이가 아니기에 미리 주먹밥을 만들어 먹였다. 유진 이모가 만들어 주는 주먹밥. 다 같이 모이게 되면, 지금 손이 남는 사람, 이걸 잘 할 만한 사람이 탁탁 일을 해낸다. 아이를 챙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모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세 아기는 잘도 받아 먹었다.

남들을 먹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 마음씀씀이가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유진도 마찬가지이다. 유진은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대학교 시절에는 길 건너 이웃학교에 다니면서 서로 하숙집을 왕래했고, 자취를 시작한 뒤에는 툭하면 모여서 저녁밥을 만들어 먹었다. 나이만 먹고 차려 입는 허우대에만 관심있는 헛어른이었던 그 시절에 우리를 든든히 먹였던 건 항상 유진이었다. 부엌에서 유진이가 뚝딱뚝딱 금새 각종 찌개며 반찬을 만들어내는 것을 우리들은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항상 우리를 챙기던 유진이가 늦은 사랑을 시작하고 이제 내년이면 엄마가 된다. 유진이는 사랑 앞에서 자신을 현명하게 변화시켰다. 오랫동안 유진이를 알고 온 우리에게 그 모습이 낯설 정도였다. 내년이면 '엄마'로서 유진이는 아마 또 한 번 자신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 모습 또한 아름다우리라.

이제 버찌씨 중 세 명이 엄마가 되었고, 한 명이 두 달 반만 지나면 엄마가 된다.
이 날 모이자 자연스럽게 둘째 이야기가 나왔는데, 선희와 혜원이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둘째를 생각하고 있어서 많이 놀랐다. 게다가 직장맘이면서 말이다! 둘 다 다음 해에 임신해서 다다음해에 낳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있었다. 둘째를 당연시한다기 보다 "있으면 좋지만..."이라고 말줄임표로 끝내는 걱정이 더 많았던 내 주변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 날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둘째를 낳기로 결심을 했다. 따로 육아를 도움받을 만한 상황도 안되고 몸도 아프고, 완벽주의때문에 육아 스트레스가 더한 사람이라는 걸 내 스스로 뻔히 알면서도 내린 결정이었다. 아는 아기 엄마에게 이것을 이야기하자 "친구가 아기 길러주나?"라고 했다. 그래, 친구들이 지척에 사는 것도 아니니 친구랑 같이 아기를 기른다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육아와 회사일을 동시에 겪으면서도 둘째를 당연시하는 친구들의 마음에 많이 동화되었고 또 위로받았다. 사실 나에게 필요한 건 같이 걱정해주기보다 "괜찮아! 낳아도 돼!" 라는 시원한 격려였다. 내 마음은 둘째로 이미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모임의 목적이었던 대하가 차려졌다. 어쩌다 보니 유진 남편인 승근씨가 항상 상석에 앉아 계셔서 주인장같다. ㅋㅋㅋ 아이가 셋이다 보니 자리가 떠들썩하다. 이제 여기에 아이가 한명씩 더 늘어나고 유진이 아이까지 늘면 버찌씨의 모임은 얼마나 부산해질까? ^^

아기들을 재우고 동그랗게 모여앉아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회사에서의 어이없는 실수담과 힘든 육아 이야기, 매번 반복되는 추억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 새로 이사 온 선희네 집은 넓고 잘 꾸며져 있는 새 아파트이지만, 전세값은 우리 집보다 싸다. 넓고 공기좋은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야 다들 같은데, 직장때문에 다들 발이 묶인 상태이다. 농담처럼 흘린 버찌씨 마을이 언젠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들과 친구들의 짝꿍들이 모두 둘러앉은 이 날의 이 풍경이 믿기지가 않아 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잠을 못 이뤘던 지성이는 많이 피곤해 했다. 조용했던 집에 갑자기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쳐서 웅성대니 민감한 아기는 들썩이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힘들어 하는 듯 했다. 땡깡도 많았고 그래서 선희와 추기경도 힘들어했다. 선희와 추기경이 아침상을 준비하고 이리저리 방을 치우느라 분주한 틈에 유진이가 지성이를 품에 안았다.

하나의 장난감을 사이에 둔 윤우와 지성이. 평화롭고 따스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정확히는 윤우가 이야기하는 것) 가관이었다.
"거기에 꽂으면 안돼......거기에 꽂는 거 아니라니까..... 도대체 왜 거기에다 하는 건데?"

이 날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던 당진의 여인, 선희. 아무리 맘맞는 친구들이라도 아이까지 합쳐 도합 열 명의 손님을 치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선뜻 우리를 초대해 준 것이 너무 고맙다. 게다가 다음 주 주말에는 친정 식구들을 불러 대하잔치를 한다고 한다. ^^;;;
 
선희와 나머지 버씨씨들은 대학 시절부터 물리적인 거리감이 있었다. 그 이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일년에 손에 꼽게 만나면서도 우리가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선희의 '안정감' 때문이었다. 선희는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았고, 바람 든 풍선처럼 둥실거리는 우리의 끈을 꼭 잡아 주었다. 막다른 곳에 몰린 느낌이 들 때면 선희가 생각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취직도 안 한 채 캐릭터 디자인을 하겠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동그마니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선희에게 전화를 걸어 두려움에 끝에 몰린 울음을 토해냈었다. 뜬금없는 전화에 놀란 선희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학 캠퍼스에 서서 전화기를 붙잡고 들썩대던 내 어깨가 차츰 잦아들다가 다시 하늘을 봤던 기억만 남아있다. 참으로 고마웠었다.

내년이면 선희는 지성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맡아줄 어르신이 없는 상황에서 맞는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 한 번의 고비이다. 연고없는 당진에서 아이를 낳고 외로운 섬이 되어 첫 번째 괴로운 고비를 맞았을 때 우리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선희의 어깨를 감싸주어야겠다. 예전에 선희가 그랬듯이.

몇 년만인지..우리가 이렇게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 까만 스타킹에 하얀 양말 접어 신던 순진하고 촌스러운 학창 시절도 지나고 한창 멋내던 아가씨 시절도 지나 이제 한 가정의 울타리에 들어간(또는 조만간 들어갈) 우리들.

이제 어디가도 30대 여인네로 보는 것이 당연한데도 스스로 헤아리는 나이는 학창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이를 질문받을 때마다 올해에서 내가 태어난 해를 빼고 1을 더하는 수식을 반복한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흘러가는 세월을 끊임없이 알려줄 것이다. 그 세월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