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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겁쟁이 엄마의 고백

고래의노래 2011. 10. 29. 00:22
아이가 자라고 엄마도 자란다.
하루종일 붙어있는 데다가 이제는 똥냄새까지 똑같아진 만 3년 된 껌딱지 연인인 윤우와 나. 그렇게 서로 섞여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려니 싶었다. 네가 좋아할 만한 것은 내가 알고 있다고, 그게 바로 '우리'가 다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밑도 끝도 없는 어리석음인지 깨닫는 데는 꼬박 가을 한 달이 걸렸다.

윤우가 먼거리 버스 여행에도 제법 익숙해지자 내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햇볕 쨍쨍한 여름 날에 일찌감치 아이와 가을에 나들이할 곳의 리스트를 빽빽하게 적어놓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무섭게 숙제하듯이 이를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기동력이 떨어지는 뚜벅이 나들이였지만, 한 쪽 어깨엔 유모차를 매고 다른 한 팔에는 아이를 안고서 버스를 타는 일도 점점 익숙해졌다. 차도 없는데 이렇게 힘들게 나들이 데리고 다니는 엄마가 어디 흔한가, 난 정말 멋진 엄마다! 라는 자아도취도 깊어져 갔다.

광화문 광장, 명동, 인사동은 물론이고 멀게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버스를 3번 갈아탔다.)까지 갔고 가깝게는 코엑스 아쿠아리움, 뚝섬 유원지, 어린이 대공원으로 출동했다. 이제 막 시작된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를 물색하듯 다음 날 윤우와 어디 갈까를 궁리하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대중교통으로 닿기 어려운 곳은 주말을 이용해서 남편과 함께 했다. 용산 가족공원, 서울숲,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서울대공원과 국립미술관, 남산 한옥마을...
여행과 나들이를 좋아하는 나는 모든 일정이 만족스러웠고, 온종일 밖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온 날엔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윤우의 마음은 달랐다.

 10월 초, 아침 일찍 부산스럽게 준비를 해서 덕수궁으로 출발했다. 오전에 덕수궁 북페스티발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서울에 오는 일본 친구를 만나 명동과 광화문, 경복궁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윤우는 페스티발 부스들을 조금 둘러보더니 이내 집에 가자며 졸랐다. 아주 먼 곳에서 친구가 오니 같이 기다려달라고 설명도 하고 사탕과 군것질거리들로 어르고 달래서 겨우 일본 친구와 만나긴 했지만,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심하게 보채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거였다. 아직 자신의 상태나 느낌,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윤우이기에, 처음에는 엄살부리며 떼를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뜨겁다. 아차 싶었지만, 일본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친구를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윤우를 하루종일 유모차에 태운 채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녀야 했다.

헤어지기 전 카즈에게 안긴 윤우. 아픈 기색이 역력하다.
열로 뜨거워진 몸을 이끌고 이 날 아이는 힘겨운 나들이를 했다.

그 날 이후 윤우는 심하게 앓았다. (이것이 남편과의 결혼기념일 데이트 바로 전이었다.)

그렇게 앓으면서 아이는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 윤우는 집이 좋아...집에서 자꾸 나가지 마. 

윤우 또한 엄마와 함께 가을 나들이를 즐기고 있을 꺼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많이 당황했다.
나는 '이건 몸이 아픈 '지금 당장'의 속마음이지 평상시의 마음은 아닐 꺼'라고 애써 편하게 해석해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도 우리는 먼 나들이를 계속했다.

하지만 윤우의 집타령은 멈추지 않았다.
10월부터 시작한 숲 유치원에서도 아이는 자꾸 집으로 가자고 보챘다. 숲 유치원은 근처 숲에서 엄마와 아이 8팀 정도가 모여 숲 해설사와 함께 자연놀이를 하는 수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시간 반동안 진행되는데, 이제까지 다니던 문화센터 대신에 신청해 두었던 것이다.
문화센터 수업은 올 해 봄 즈음부터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수업 시작하고 십분이 지나면 여지없이 나가자고 했다. 실내 수업을 답답해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야외 수업인 숲 유치원은 즐길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수업 참여를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몇 주 뒤에는 숲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예 집에 가자고 보채는 상태가 되었다. 너무 심하게 보채서 수업시작 5분만에 집으로 돌아와 버린 적도 있다.
그렇게 수업 중에 두번째로 집으로 데리고 가다가 나는 화가 나 버렸다. 혼자 집으로 가라고 매정하게 손을 뿌리치니 엉엉 울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몇 번 뒤를 돌아 엄마를 보다가도 다시 엉엉 울며 내려간다. 서러운 울음이었다.
결국 아이 손을 잡고 산을 내려온 후 아이를 안으면서 미안하다고 나도 울어버렸다.

곱게 물든 단풍도, 사자며 호랑이도,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가 계획했던 가을날 나들이는 아이에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다만 힘겨운 노동이었다. 차고 넘치는 새로운 자극들이 피로했었던 것이다. 나들이를 하며 윤우 마음을 가득 채운 건 가을 햇살이 아니라 자기 마음 몰라주는 엄마에 대한 서러움뿐이었다. 어른 눈에는 지루해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필요했음을 그제서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집 근처 공원에 앉아 아이가 햇살을 받는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한결 편안해진 윤우.

여름 내 준비했던 나들이 리스트를 접어 책장 한 켠에 꽂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면 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은 뒤에 집 근처 마트로 장을 보러가고, 동네 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타고, 탄천변을 산책했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가까운 중앙공원으로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갔다. 한참을 유모차를 끌며 놀더니 윤우가 얘기한다.

엄마, 너무 많이 나가지 마.
윤우는 중앙공원, 탄천, 도서관이 좋아.


아이와 보내는 온전한 하루들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나는 혼자 추억 만들기에 바빴다. 동물원으로 박물관으로 먼 공원으로...나는 아이와 곱게 물든 단풍과 파란 하늘을 함께 바라보길 바랬지만, 윤우가 원한 건 좀 더 '엄마'를 바라보는 거였다.
사실 난 아이와 단 둘이 집 안에서 서로만을 바라보는 있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의 하루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다니며 다른 곳으로 시선이 쏠리길 기대했다. 아이의 눈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족쇄같았다. 그래서 나 말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겁쟁이 엄마였다고 스스로 솔직히 인정하고 나서야 윤우의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끌려다니는 나들이가 얼마나 피곤했을까, 매일매일 새로운 환경이 얼마나 벅찼을까, 그리고 자기 맘 몰라주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겨울에 우리는 아무 일정도 잡지 않을 계획이다.
어떤 수업도 문화센터도 없이 무료하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려한다.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집에서 귤 까먹고 호떡 해 먹고 고구마와 호빵 쪄 먹으며 뒹굴거리는 소박한 일상을 윤우에게 선물해야겠다. 따뜻한 이불 속에 나란히 다리를 덮고 앉아,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나 또한 축복처럼 바라보리라.

긴 겨울, 밖에도 못나가고 아이랑 뭐하냐며 막막하게 두려워했던 겨울의 무료함이,
이제 선물같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