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80)
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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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 살고있는, 웃고있는.. 막둥이와 같은 아픔을 가진 아기사진을 보았다. 막둥이도 저럴 수 있었는데 어떤 미소를 지었을까. 어떤 눈빛을 가졌을까. 막둥이가 사무치게 아파서 아침엔 이솔이 앞에서 울어버렸다. "엄마, 왜 울어?" "막둥이 보고싶어서." 이솔이는 "막뚱이?"이러더니 "내가 데려올께."하며 무언가를 가져와서 "자~"하며 상에 놓는 시늉을 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여기 넣어야지."하며 내 배를 가리킨다. 난 막둥이를 다시 넣는 시늉을 했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하며 날 어설프게 안는 이솔. 그렇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며칠 전 막둥이를 낳는 꿈을 꾸었다. 아픔없이 그때 그 날처럼 내 안에서 스르륵 나온 막둥이. 태어났는데 울지도 안고 고요히 잠든듯 눈을 감은 막둥이를..
내 눈 대신 내 허리가 울고 있는 것만 같다. 점점 심해지는 허리통증. 막둥이가 그립다. 막둥아..
막둥이를 보낸 후 알게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사람들도 나름의 상처와 아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아파도 남들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상처를 겪어보자 다른 사람들도 가슴 속에 이런 말못할 아픔 하나쯤 있겠구나..싶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아, 남들도 다 그렇구나..그랬구나..라는 느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애처롭고 대견하다.
막둥이가 하늘로 가고 그 소식을 주변에 알리자 위로의 메세지들이 쏟아졌다.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남편이 주변의 방문이나 연락을 차단해 놓은지 며칠이 흐르고, 난 가만히 있다가도 밥먹다가도 울면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소식을 듣고 지인 한 분이 집에 있는 반찬을 한보따리 들고 지나가는 길에 들르겠다고 했다. 나를 못보면 남편에게라도 전달하고 가겠다고. 마침 남편이 집에 없어서 내가 문을 열고 만났다. 막둥이를 보내고 처음 만나는 가족 아닌 다른 사람. 반찬을 받아들고 그 엄마를 안고 엉엉 울었다. 그 후 나는 알았다. 진정한 위로는 와서 손잡아주고 안아주는 거라는 걸. 내가 혼자 있겠다고 했지만 '기도하겠다..힘내라..빨리 몸 추스르기 바란다..' 핸드폰으로 쏟아지는 문자들은 그야..
가슴이 꽉 막혀서 답답하다. 이 슬픔과 고통이 내 인생을 이끄는 또 하나의 깨달음과 교훈을 줄꺼라 생각하는 것도 싫다. 내가 싫어도 이제껏 모든 고통들이 그랬듯 시간은 그렇게 모든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겠지. 그래서는 안되는거다. 이 고통과 죄책감을 붙잡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속죄인 듯 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함께 고통을 겪은 남편한테도 심지어 하느님께도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겠다. 갈 곳 없는 주절거림을 여기에 토해낸다.
한 때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자신을 뛰어넘어 희생하는 것이, 그럴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고 느꼈다. 그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가슴을 짖누르고는 했다. 같이 있으면 넘쳐 흐르는 행복에 온 몸이 부푸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사랑을 한 적도 없고 영원히 하지도 못할 것이다. 존재 자체를 온전히 긍정하며 끌어안는 그런 사랑, 난 해 본 적이 없다. 내 사랑의 대상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했었다.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사랑을 운운할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화장가마로 들어가기 전, 그 순간에야 나는 유골함을 붙잡고 "사랑해.."라고 말을 했다. 뻔뻔스럽고 어이없지만..
태어나서 처음 슬픔을 느끼게 되는건 언제쯤일까. 아기들은 많이 울지만 슬퍼서 울지는 않는다. 두려움, 신체적 고통, 불안때문이 아니라 슬픔때문에 울게 되는건 언제일까. 이솔이에게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따라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길래 살펴보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내 품에 파고 들더니 "아빠노래 또 불러."한다. 내 가슴에 기대여 이솔이는 한참이나 노래를 들었다. 멜로디가 묘하게 처지는 이 노래가 아이의 슬픔 버튼을 처음으로 눌렀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되렴.
어느 날은 괜찮을꺼야 했다가 또 어느 날은 한없이 불안하다. 어제는 꿈을 꿨는데 털이 많이 난 애벌레가 여기저기 보여서 이게 어디서 나온거지 했더니. 친구의 봉지에서 나온거였다. 친구에게 가져가라고함. 막판에 누군가에게서 사과를 받아서 잘라서 꿀발라 먹음. 사마귀들이 알을 낳았다. 잡아온지 오랫동안 알을 낳지않아 아직 짝짓기 못한 애들인가보다 내일 놔주자했는데 바로.그.담날인 오늘 마치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알을 낳은 것이다. 그것도 두마리 다! 그동안 이 아이들의 짝짓기를 위해 매일 수컷사마귀를 잡게 해달라고 빌었던 윤우는 왜 하느님이 수컷이 잡히게 안하셨는지 알겠다고 했다. 하느님의 큰 계획을 우리는 알 도리가 없다.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아닌 먼 미래에 다..
몸이 많이 안좋다. 천천히 안좋아지기 시작하더니 8월말 허리가 완전 나간 이후로 난 툭하면 눕는다. 이제 아이들에게 누워있는 엄마가 별 이상할 게 없을 정도. 늘어져 있어서 더 아프다고 생각되는걸까 싶어 몸을 조금 움직여보면 여지없이 입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허리가 아프면 온몸의 기둥이 아픈거라 정말 다 쑤신다. 어르신들의 몸상태가 아마 이거의 몇배는 더 힘든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노인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람들을 품는게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쉽게 몸을 따라가서 몸이 아프면 극도로 예민해지며 여유가 없어진다. 요즈음의 내가 그렇다.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고 싶으니 아이들의 요구 하나하나에 다 짜증이나고 나를 만지고 부비대는 것조차 싫다. 윤우는 아직도 자면..
이 곳에서 종종 공동육아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 제가 몇 번 답변을 해드렸었어요. 그리고 제가 드나드는 카페에서도 공동육아에 대한 질문에 조언을 해 드린 적이 있고요. 아무래도 어린이집 관련하여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데다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키우고자 하는 자연육아의 불씨가 커지면서 공동육아가 새삼 주목받고 있는 듯 합니다. 관심은 있는데 공동육아 선택이 고민되는 분도 계시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분도 많으신 듯 해요. 제가 파워 블로거는 아니지만 공동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카페에 적었던 글을 토대로 공동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고자 합니다. * 공동육아가 궁금하다면?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출자한 자본..
둘째를 임신하고 가정출산을 결심한 이후에 가장 큰 걱정거리는 예쁜이가 역아라는 사실이었다. 아이의 탄생 능력과 내 자신의 출산 능력을 믿지만, 역아일 경우까지 가정출산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자연출산으로 유명한 미셸 오당 박사의 책에서도 둔위 출산의 경우, 자연출산을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지만 분만 1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수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쓰여져 있다.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쁜이가 역아인 걸 알았을 때 자연출산 병원인 메디플라워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가 막달까지는 자세를 돌린다고 하지만 혹시 계속 둔위로 있는다면 병원에서 출산을 해야할테고 그나마 그 상황에서 둔위출산을 지지해주면서 만일의 상황을 준..
지난 9월부터 성당에서 교리수업을 듣고 있다. 세례를 받기 위한 신자 수업이다. 오래 전부터 천주교에 호감이 있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천주교 신자인 친구를 따라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여하고는 했다. 물론 식의 진행순서며 기도문, 성가는 하나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일어설 때 일어나고 앉을 때 앉는 것이 다였지만, 경건하고 차분한 그 분위기가 내 마음까지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천주교 신자인 내 친구들은 대부분 마음이 넓으면서 정의로웠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시는 여러 신부님들을 보며 편협하지 않는 종교의 진짜 모습을 보는 듯해서 훈훈했다. 평등, 사랑, 정의와 같이 모든 종교들이 추구하는 참된 가치들이 오로지 종교적인 행사 안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것을 보면서 이..
윤우는 요즈음 결혼식 상황극을 많이 한다. 장난감 자동차들 중 두 개를 골라 다른 자동차 친구들을 모두 부른 다음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케익을 나눠 먹는 거다. 친구들은 준비한 선물을 주고 결혼한 두 친구는 함께 여행을 간다. 결혼식에 여러 번 데리고 다니면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좋아하는 두 사람이 앞으로 영원히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겠다고 약속하는 거라고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하는 거라고 말해주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는데 윤우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상황놀이를 하는 걸 보니 거의 '주인공이 둘인 생일파티'수준이기에 그 정도로만 이해했나보다 싶었다. 며칠 전 윤우는 거실에서 놀고 남편과 둘이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이 서로 맞지 ..
요즈음...마음이 아프다. 원래는 일기처럼 쓰려던 이 블로그가 어느 새 육아일기와 육아철학에 대한 글 들로 가득 차면서, 나는 내 공간이던 이 곳조차도 마냥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 속 마음 하나 털어내지 못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하지 말란 것도 아니고 100% 내가 스스로를 가두고 틀에 끼워 넣고 있는 상황. 참, 웃긴다. 뭐 하는 짓인지... 어머님이 결혼 전에 어느 스님에게 날짜를 받으러 갔을 때 그 스님이 내 사주를 보더니 '걱정이 많다'고 했단다. 이제 걱정 그만하고 싶은데 내 발목을 잡고 놓지를 않는다. 신이시여...좀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