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30개월 윤우의 발달 상황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30개월 윤우의 발달 상황

고래의노래 2011. 4. 9. 14:01

    30개월이 되자 윤우는 다른 아이가 된 것만 같다. 참을성, 자제력이 커진만큼 아이러니하게 반항도 늘었다. 하라는 걸 일부러 안하고 심지어 반대로 하기도 한다. 매일매일 커다란 시험대에 올라선 기분이다. 잘 헤쳐 나가고 싶은데...

1. 지루한 기싸움

   밖에 나간 후 더러워진 손으로 자꾸 코와 입을 만진다. 아마도 비염때문에 코가 간지러워서 일 듯 싶은데, 간지러울 때마다 엄마에게 말하면 닦아주겠노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잘 듣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안 듣는 건 아니고 간지러우니 자기도 모르게 먼저 손이 올라가는 것 같은데, 며칠 전에는 그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코를 만지고 있는 윤우 손을 매섭게 내쳤다. 금방 다시 손을 코에 올리더니(반항!) 억울한지 엉엉 울어버린다. 울어놓고는 으레 그렇듯 눈물과 콧물을 닦아 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지지한 손으로 코 만지지 말랬찌!!!" 한 번 빽 소리를 지르고 옷만 갈아입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윤우가 오랫동안 울더니 나를 보고 "엄마, 화내지 마요~" 이런다. 아...무너진다. ㅠ.ㅜ 불쌍한 것. 이제 내 자책의 시간이다.

   이를 닦아주는데 유난히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칫솔을 물고 피한다. 잇몸이 안 좋아졌는지 이를 닦아주는데 아픈 모양이다. 근데 이 닦아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가 치민다. 살살 닦아주는 건 안 닦아주는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을! 억지로 입을 벌려 벅벅 닦고 울려버렸다.
   눈물 콧물 닦아달란다. "윤우 엄마 말도 안 듣는데 엄마가 왜 필요해! 안 필요하지!!" 소리를 지르니까. "엄마 필요해! 윤우 엄마 필요해!!!" 이러더니 달려와서 다리에 매달려 운다. 자..다시 자책의 시간. T-T

   밤에 자기 전에 장난감을 정리하도록 시킨다. 자기가 마음이 동하면 정말 엄청 빨리 정리하는데 요즈음은 무슨 일인지 전~~혀 정리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가 정리를 도와주면 방 안이 깨끗해 지겠다." "엄마는 이거할테니 윤우는 저거할까?" "자동차 상자 안에 퐁당 넣기 놀이할까?" 이런 육아서 방법이 모두 안 통한다.
   말은 안 듣고 느물느물 거실 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걸 보고는 화가 나서 엉덩이를 정말로 세게 팡팡 내리쳤다. 웃는다..T0T 엄마가 때리는 회초리에 실실대는 건 사춘기 때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이대로 윤우랑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까지 된다.

   주로 이렇게 1. 지지한 손으로 입, 코 만지기 2. 양치하기 3. 정리하기 문제가 발단이 된다. 
   윤우와 기싸움 끝에 윤우가 울고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씩씩거리고, 결국 윤우가 애걸복걸하고 난 또 안 쓰러워서 자책하는 과정을 3일 내내 지루하지도 않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말 안 듣는 초등학생 윤우가 이제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이다. 이제 이쁜 시기도 지나고 싸움 밖에 안 남은 건가, 계속 이대로 지난한 힘겨루기 뿐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정말 내 성향에는 딸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2. 스스로 선택하기의 위대함

   반항은 사실 '내 의지'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하는 행동이다. 그만큼 아이가 컸다는 것이다. 반항이 늘은 만큼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깜짝 놀랄 만한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 머리감을 때 울지 않기
  두 돌 쯤부터 머리를 감길 때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못 감길 만큼은 아닌데, 무언가 불편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데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돌연 "윤우 잉잉도 안해." 이러더니 정말 머리를 다 감길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거였다. 어떠한 회유나 협박도 없었는데 스스로 결정하고 변해버렸다.

- 내가 빌린 책이니까!
  화요일에는 아파트 단지에 오는 도서관 버스에서 책을 빌리고 2주에 한 번은 중앙 도서관으로 책으로 빌리러 간다. 두돌 즈음 중앙도서관의 어린이 열람실에 데리고 갔었는데 영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밖으로만 나가려고 해서 세 돌은 있어야 다시 찾겠구나 싶었는데, 날도 풀리고 나들이 할 겸 다시 시도한 것이다. 확실히 컸는지 예전보다는 책을 이리저리 살피며 꽤 오래 머문다.
   윤우가 중앙 도서관에서 처음 빌린 책은 <마음씨 좋은 과일 장수> 'SBS 아이린'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에서 펴낸 수학동화 전집 중 한 권인데, 내가 보기에 내용도 그림도 조악하다. ㅜ.ㅠ 동물들이 과일장수를 '과일장수'라고만 불렀다가 '과일장수 아저씨'라고 했다가 왔다 갔다 거리고 대화체와 서술문의 따옴표 구분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러한 '원칙'이 무시된 책은 최저라고 생각하는데, 윤우가 빌리겠단다. 내용도 그리 흥미진진하지 않는데 자기가 빌린 책이어서 그런지 집에 와서 곧잘 빼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 
   어린이 날 즈음에 어린이 서점에 가서 책 한권을 고르게 해서 사 줄 생각이다. 죽전으로 이사가게 되면 죽전 도서관에 윤우 이름으로 대출증도 만들어 주어야 겠다.

3. 무서운 게 너무 많아요

   어렸을 때는 무서울 게 없던 천하무적 윤우였는데 이제 아는 게 많아져서 그런지 무서운 것도 많아졌다. 구멍이 숭숭 뚫린 커다란 구조물들은 그 구멍에서 뭔가 나올 것 같아 그런지 무서워하고 세찬 바람도 무섭다하고 심지어 햇빛 속에 보이는 먼지까지 무섭다고 했다.
   무언가 무서워할 때 "이게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운 거야."라고 얘기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런건 육아서를 읽어보지 않아도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일. 윤우가 먼지를 날아오는 벌레로 생각해서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렇게 웃기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며 아기의 감정을 한마디로 부정해버리시는 부모님들께 충고를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무서우면 엄마한테 와. 엄마가 안아줄께. 안 무서워 질 때까지 안아줄께. 지금은 무섭지만 윤우가 클수록 안 무서워질꺼야. 걱정마."라고 일단 안심시킨 후 며칠 뒤에 "와~ 먼지가 둥실둥실 떠다니네~ 춤을 추나봐. 재밌다~"라고 하니 냉큼 말려든다. 그래서 이제 먼지 공포는 극복한 상태.
   길거리에서 무섭다고 하면 내가 안아주고 걸어가니까 이걸 역이용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위처럼 멀리 돌아가면서 기다리는 방법을 유지해보려 한다. 언젠가는 윤우가 나보다 커서 나를 안아줄 날도 있겠지.

4. 사진도 찰칵!

   드디어!!!!!!!!!!!!!! 사진기를 들이대도 폭주하지 않는다. 사진찍는 행동을 이해한 것 같다. 같이 셀카 찍는 것까지도 가능해졌다. 아직까지도 웃는다거나 눈가에 V를 그린다거나 하는 행위는 당연 하지 않지만... 그냥 서 있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작아진 옛날 아기옷 입고 찰칵! 맨날 저 진분홍 옷만 꺼내서 입어보겠단다. 내가 은근 좋아하는 걸 아는걸까?

5. 세차장 홀릭

   주차장 사랑이 세차장으로 이동했다. 우리 집 근처 주유소에 세차장이 있는데 매일 찾아가 출석 체크를 하는 상황. 아쩌시와도 이미 안면을 텄다. ;;; 가자고 잡아끌지 않으면 세차장 앞에서 장승이 될 기세다.

6. 아기 때를 정말 기억하는 걸까?

   아기 때 윤우 침대에 매달아 주었던 모빌에서는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자장가가 나왔다. 지난 달에 <어린이 클래식>이라는 씨디 세트를 샀는데 거기에 모차르트의 자장가가 있었다. 윤우가 이 곡을 듣더니 마치 토끼처럼 몸을 세우고 귀를 쫑긋거린다. "윤우 어렸을 때 듣던 거야." 오잉? 정말 기억하는 걸까? 예전에 내가 말해준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관심을 보이니 신기하다.
   아기 때 전신 마사지를 해주며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엄마는 우리 아가 사랑해~ 아빠도 우리 아가 사랑해~ ♬" 이렇게 진행되는 단순한 노래로 어떤 클래식 반주에 가사만 붙인 거다. 어느 날 이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윤우 어렸을 때야." 이런다. 음..말해준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이 노래에 푹 빠져서 주어를 바꿔서 제시하며 나한테 부르라고 한다. "주차장은 우리 윤우 사랑해~ 세차장도 우리 윤우 사랑해~ 검은 물(세차할 때 차에서 떨어지는 물)도 우리 윤우 사랑해~" 요런 식. 이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하더니 모든 것들이 윤우를 사랑한다며 나에게 확인을 받는다. 뭐 자존감이 높은 것은 좋은 거겠지. ^^ 아직은 '슈퍼맨 자아'의 시기이니.
   아기들이 태내 기억을 5세 정도까지는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종종 윤우한테 "엄마 뱃속에서 뭐했어?"라고 물어보는데 비실비실 웃기만 하고 얘기를 안 해준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얘기해 주는 아기들도 있다고 하던데.(엄마의 직장 상사 얼굴을 기억한다던지...) 너무 궁금하다. 진짜 기억하는 걸까?

7. 참고 기다릴 줄 알아요

   윤우가 나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경우 인데, 내가 밥먹을 때 그리고 아침밥 준비할 때이다.
   두 경우 모두 윤우가 계속 칭얼거리고 나를 찾아서 힘들었는데 상황이 변하지 않자 자기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제 두 경우 모두 제법 잘 기다린다.
   "기다리면 밥이 뾰로롱~ 하고 나올껄!"이라면서(이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그동안 거부하던 '아빠 무릎에 앉아 책읽기'까지 한다. 내가 밥먹을 때는 종종 찾아와 아직 다 안 먹었나 내 밥그릇을 확인한다. -_-;

8. 관찰형 학습자?

   문화센터 수업을 듣다보면 아기들 유형이 나뉜다. 선생님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멀뚱히 보기만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윤우는 물론 후자이다. 수업에 흥미가 없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집에 와서 해당 씨디를 틀어놓고 혼자 춤추는 걸 보면 싫지는 않은 듯. 현장에서는 관찰만 하고 싶은 걸까? 아님 수줍은 걸까? 그것도 아님 귀차니즘???
   선생님을 따라하지 않으니 당연히 선생님의 지시대로 흘러가는 수업은 윤우에게는 무리였다. 집 주변에 꽤 유명한 미술교육원이 생겼기에 무료수업을 신청하고 들어보았는데, 10분도 안되어 윤우는 "이제 나갈래."라며 수업 포기를 선언해 버렸다. 아직까지는 관찰형 수업이나 자유놀이 수업만 참여시켜야 겠다.

9. 숫자와 알파벳

   확인해보지는 않았는데 알파벳은 거의 다 아는 듯 하다. 이건 아마 <토마스 토킹 딕셔너리>의 힘인 듯. (해당 책에 대한 소개는 http://whalesong.tistory.com/276) 영어에 비하면 한글은 정말 가르치기 어려운 글자같다. 조합형 글자...어렵다. 내가 한글을 어떻게 뗐는지 기억도 없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 즈음 가르치는 엄마들도 있는 것 같던데 일단은 놔둬 보련다.
   숫자는 엘레베이터 버튼 누르기에 흥미를 보여서 하나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것도 확인 해보지 않아 어느 정도 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반 정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10까지는 아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