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윤우와의 첫 이별, 그리고 힘든 짝사랑의 시작.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윤우와의 첫 이별, 그리고 힘든 짝사랑의 시작.

고래의노래 2009. 11. 16. 15:36
윤우와 못 본지 만 4일째 되어 간다.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내 주위는 고요하여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로 은근 치부해버리고 있던 '신종플루'에 엄마가 덜컥 걸려 버리고 만거야.

지난 일요일 저녁부터 콧물이 수돗물처럼 줄줄 나와서 심한 코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오후에 낮잠을 잠깐 자고 일어나보니 온 몸이 화끈화끈. 열을 재어보니 38.5도 였다. (급성열성호흡기 증상이 있다더니 정말 "급"이었다. 콧물도 갑자기 줄줄 흘렀고 열도 갑자기! )

놀란 마음에 잠실 할머니께 와주십사 전화드린 후에 할머니가 오시고 나서 거점병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 갔더니 온도가 36.7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일단 감기약만 받고 나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윤우를 할머니와 함께 잠실로 대피시키고, 다시 몸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데, 열이 또 슬슬 오른다. 역시 밖이 추워서 잠깐 내려갔던 거였나보다. 마침 퇴근한 아빠와 다시 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고 그 유명한 '타미플루'를 받아왔다. 그리고 어제 새벽 받은 확진결과는 "양성"이었다.

그 때부터 윤우와 엄마의 이별이 시작되었지. 처음에는 윤우가 없는 집이 약간 어색하다고 느꼈을 뿐, 크게 슬프지 않았어. 타미플루를 먹고 증상이 많이 호전된 다음 날에는 윤우가 없는 이 휴가기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하면서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니까.

오랫만에 아침 8시까지 자보기도 하고, 밤 12시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밤에 커피숍으로 외출을 나가기도 했다.(물론 외출은 전염성이 거의 없어지는 3일째부터)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3일째에 나한테 무심하다며 아빠에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서, 우리 침대 옆 윤우 잠자리 앞에 앉아 보았다. 윤우가 잘 때 옆에 뉘여 두었던 인형과 윤우의 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는데, 윤우 냄새가 안난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실로 간 윤우는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엄마를 찾지도 않고 잘 먹고 잘 논다고 한다. 엄마도 없는 집 밖 환경에 잘 적응해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 윤우 녀석, 이러다가 나를 완전 잊어버리고, 할머니한테 애착을 형성해버리는 건 아닌지. 엄마의 자식사랑이라는 건 정말 짝사랑일 수 밖에 없는걸까. ^^;; 내일 의사소견을 들어보고 윤우를 만나러 갈지 결정할 생각인데, 엄마를 보고 윤우가 반가워하지 않으면 어쩌나 두렵구나. T-T

엄마도 모르게 윤우와의 관계가 엄마에게 많은 의미가 되어 있었어. 며칠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마음 속에 콕 들어왔단다.

" 사실 성가신 것을 떠올리자면, 아이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득불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것을 위해 다른 많은 것을 희생한다. 거기에 '관계맺기'의 비밀이 있다. 더 많이 우리를 귀찮게 하고 염려하게 하는 것일수록 더 많은 사연을 쌓으며 우리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또, 일단 가슴 속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성가심과 근심에 대해 너그러워지게 된다. 요컨데, 성가심을 피하고서 깊게 맺을 수 있는 관계란 없는 것이다."
- <엄마, 내가 행복을 줄께> 오소희 -

힘든 짝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걸 엄마는 내일이면...실감하게 되려나. ^^
윤우야, 꿈 속에서라도 엄마를 찾아와 주렴.

'엄마로 사는 이야기 >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심정이..그 심장이...  (0) 2009.12.18
윤우의 마법  (0) 2009.11.20
나눔은 행복  (0) 2009.10.29
윤우의 돌잔치  (0) 2009.10.24
윤우는 인어왕자!  (0) 200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