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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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윤우의 마법

고래의노래 2009. 11. 20. 15:35
윤우의 잠패턴이 심하게 꼬였다. 10개월째 들어 애를 먹이던 낮잠시간이 규칙적으로 변하고 밤잠도 길어지면서 수면일지조차 쓰지 않았었는데, 갑작스럽게 이번 주에 급격하게 변해버린 거야.

낮잠을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으면 심하게 버둥거리면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밤잠을 자기 시작한 이후로 자주 깨기도 한다. 심지어 어제는 밤잠을 자다 일어나서는 저녁 11시까지 자지 않았어. 그것도 겨우겨우 분유를 먹이고 달래서 재울 수 있었단다. 그러다가 오늘은 급기야 11시부터 1시까지 1번의 낮잠밖에 자지 않았다. 낮잠이 한 번으로 바뀌는 시기는 18개월 쯤이라고 알고 있는데, 벌써 잠패턴이 바뀌려는 걸까? 아니면 독감 주사 맞은 이후에 몸이 좀 안 좋아졌나?

윤우가 잠을 안자면 엄마는정말 피곤해진단다. 윤우와 놀아주어야 하는 단순한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언제 잘지 모르는 대기 상황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 뿐더러, 피곤에 쩔은 윤우는 윤우대로 짜증을 부리기 때문이지. 이렇게 해봐도 저렇게 해봐도 잠을 쉬이 안자면 엄마는 화가 치솟아오르기 시작해. 다시 아기 낳는 건 문제가 아닌데, 낳은 이후 재우는 문제로 또 다시 1년간 속썩을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날 정도란다.

하품을 하며 졸려하기는 하는데, 안아주고 자장가를 부르고 공갈을 물려보고 옆에 같이 누워 다독여봐도 안되니, 참다참다 폭발한 엄마는 윤우 엉덩이를 팡팡 때리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그런데 윤우는 엄마가 소리를 질러도 쫄지도 않는다. 우쒸..T0T 혼나고 있는 줄도 모르나보다. 그래, 사실 잠 안자는 게 무슨 혼날 일인가..ㅜ.ㅠ

신종플루 때문에 밖에 마음놓고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인데다가 추운 날씨 탓에 복도 마실도 줄어들어서 윤우와 엄마는 좁은 집안에서 둘이 복닥거리며 서로에게 짜증도 내고, 장난도 걸어보고, 투정도 부리면서 지내고 있지.

저녁에 윤우 밥을 먹이고 거실에 드러누워 엄마는 시집을 소리내어 읽었어.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장난감에 매달려 놀던 윤우가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 기어와서 옆에 누워 책을 빼꼼 들여다보더니 조금 더 시의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어린 아들과 나란히 누워 시를 읽는 마법의 시간은 역시나 오래가지 않는구나. 재밌는 그림책이 아니라는 걸 알자 엄마를 보고 해실 웃더니 얼굴공격 시작이다. ^^;

짜증으로 범벅이었던 긴 하루가 하나의 시를 공유했던 찰나의 반짝거림으로 녹아버린다. 어디서 배워 온 걸까. 지친 엄마를 위로하는 윤우의 마법..

길고 힘들었던 하루였던 만큼 편안한 잠을 자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