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엄마가 기억해줄께.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엄마가 기억해줄께.

고래의노래 2010. 3. 22. 15:28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제 오후, 아파트 복도에 나가 함께 눈을 보는데 하늘을 향해 힘껏 고개를 뺀 윤우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너무너무 신이 나는지 발까지 동동 구르며 깔깔거린다. 눈오면 아이들과 강아지가 제일 좋아한다는 말이 실감나네. 찰칵.

엄마의 크림통을 슬며시 가져가더니 눈깜짝할 사이 뚜껑을 열고 휘젖고 있었다. 얼른 저지하려는데 손에 묻은 크림을 얼굴에 열심히 토닥인다. 엄마, 아빠가 화장품 바르는 걸 보고는 해보고 싶었나 보다. 찰칵.

노란 스쿨 버스를 좋아한다. 아파트 복도에 나가서 밖을 볼 때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소리를 엄청 크게 지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이다. ^^; 찰칵.

<HUG>라는 그림책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엄마 원숭이와 아기 원숭이가 꼬옥 끌어안고 있는 그림이 나오자 팔을 벌리며 다가와 엄마를 와락 안아준다. 뽀뽀해달라고 애원해도 매번 확실하게 거절당해서 못내 서운했는데, 엄마는 윤우의 포옹에 가슴이 찌릿할 만큼 행복하다. 찰칵. 찰칵!

가끔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포근하고 나른하던 느낌이 깨어진 것이 영 언짢은가 보다. 그럴 때는 엄마에게 코알라처럼 바싹 안기는데, 시큰한 오줌냄새와 끈적한 땀냄새가 섞인 '윤우 냄새'가 난다. 엄마는 윤우의 목 언저리에 코를 박고 그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몽글몽글한 우리 아기 냄새. 찰칵! 찰칵! 찰칵!

정말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들은 그 무엇으로도 기록해 둘 수가 없구나. 카메라는 항상 차선의 순간을 담아낼 뿐, 최고의 추억은 항상 눈 속에 기록할 수 밖에. 게다가 윤우 냄새 이런 건 어디에 담아둘 수도 없고...

윤우는 기억하지 못할 추억들이기에, 엄마는 추억 2인분을 가슴 속에 담아둔다. 눈으로 찰칵. 마음으로 찰칵.
이 순간, 여기에 윤우와 함께 있어 꿈처럼 행복한 날들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