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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아기의 취향

고래의노래 2010. 1. 17. 21:14

이제 윤우는 스스로 까꿍놀이를 할 줄도 알고, (커튼 속으로 숨었다가 나타난다.) 의도적으로 장난을 걸 줄도 안다.
방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부스러기를 주워서 알려주는 것은 여전한테, 예전과 다른 점은 순순히 주지 않는다는 것. 달라고 하면 이리저리 손을 치우며 깔깔댄다. "저 사람은 내가 A 하면 B 하는구나."하는 예상능력을 뛰어넘어 "내가 A 하면 B 할테니, C 로 받아줘야지."하는 응용력까지 생긴 것이다.

반면에 부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발달 사항도 있다. 엄청 까탈스러워져서 귤에 붙은 하얀색 섬유질이 조금이라도 굵다 싶으면 떼어달라고도 하고, 고구마의 심줄이 정말 미세하게 도드라진 것을 보고 나에게 도로 주는 등 예민하게 군다. 지난 주에 똥을 먹은 주제에 말이다!!!! -_-;;;

이렇게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점진적으로 강도가 증가하는) 발달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지만, 취향, 선호도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구체화되는 사안의 경우에는 미루어 짐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실 태어난 이후부터 윤우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나이므로 나는 윤우에 대해서라면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윤우의 취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일 때 중반이 넘어갈 즈음에는 현저히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이럴 때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틀어주어서 자리에 주의를 끈 후 먹이곤 한다. 주로 핸드폰 자체에 기본으로 저장되어 있는 곡들을 들려주는데, 미디엄 템포의 귀여운 사랑노래 한 곡, 체리필터 풍의 민트락 한 곡, 엄청 음울한 발라드 한 곡 이렇게 총 3곡이 들어있다.

나는 '아이니까 당연히!'라며 첫번째와 두번째 음악만 계속 들려주었었다. 의도적으로 발라드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곡이 넘어가다가 3번째 곡을 윤우가 듣게 되었는데, 정말 심각하게 집중하는 거다. 사랑노래로내가 넘기니까 짜증을 내며 내게 핸드폰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 다시 틀어주니 또 집중.

그 노래가 정말 윤우의 취향일까? 아니면 접해보지 않았던 느린 템포의 곡이 신기했던 걸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 진실이냐에 상관없이 내가 윤우에게 '아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아기니까 발랄한 곡들만 좋아할꺼야" 라는 섣부른 판단과 "아기니까 밝은 노래만 들어야지."라는 당위의 굴레 말이다.

유명한 그림책 가이드북인 <어린이과 그림책>에서는 이러한 굴절된 판단때문에 어린이들에게 귀여운 그림책만 보여주려 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귀엽다라는 이미지는 지나간 어린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어른들의 과거 지향적 감정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며 미래지향적인데,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심지어 어린이 성장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었는데도 난 왜 깨닫지 못했던 걸까. -ㅂ- 사람은 역시 경험으로밖에 배울 수 없는 걸까.
윤우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어서 인생의 심미안을 제공해주고자 했던 나의 겉만 번지르르 했던 마음이 부끄러워 졌다. 윤우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장막이 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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