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엄마의 공책> - 닮고 싶은 그녀의 아름다운 선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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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책> - 닮고 싶은 그녀의 아름다운 선택

고래의노래 2011. 6. 26. 17:18
엄마의 공책 - 10점
서경옥 지음, 이수지 그림/시골생활(도솔)

이 책의 저자인 서경옥님은 글쓴이 소개에 나오는 것처럼 남편 뒷바라지하고 딸자식 잘 키워 지금은 시집보낸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책에 씌여진 내용대로 보면 그녀의 인생은 정말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는 피아노를 배웠고, 60년대에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수놓기를 즐기고, 가야금, 창도 수준급이고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다. 십년 전에는 봉평에 집을 마련해서 서울집과 시골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중산층 지식인 집안의 가정주부가 곱게 자라, 곱게 생활하다, 곱게 늙어가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취미생활 이야기와 시어머니, 어머니 이야기, 딸과의 에피소드들이 소소하게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소리 지저귀는 오솔길을 차분히 걷는 기분이다. 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돌부리도,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도 없다.
삐딱하게 얘기하면 배부른 이야기, 솔직하게 얘기하면 부러운 이야기들 뿐이다.

자신의 신변잡기식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에 난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요즈음 쏟아지는 많은 여행 에세이와 포토 에세이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독자에게 해 줄 이야기도 없으면서 예쁜 사진과 혼자만의 감성들로 페이지가 가득 차 있다. 그 넘치는 감정에 휘둘려 허우적 거리다 읽기를 그만 둔 책들도 여러 권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빌려 읽은 후 이 책을 샀다. 그녀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따뜻하게 열려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믿어서 열어둔 마음의 문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그 사람들 때문에 내 삶이 기대치 않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즐겁고 두근거리며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

수 놓을 때 쓸 색실을 구하러 갔다가 가게에서 꼬인 실 풀어주는 일을 도와주고 실을 한 웅큼 받아오는가 하면, 닫힌 미술관의 문을 무작정 두들겨 양해를 구하고 미술관을 구경한 후 그 곳의 수석 큐레이터와 안면을 터 딸의 전시회가 그 미술관에서 열리게 끔 다리를 놓아주기도 하고, 비바람을 피해 들어간 정선의 어느 시골집 아이들과 우정을 쌓으며 편지로 교류하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을 믿고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그녀의 넉넉하고 강한 마음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 믿음 때문에 그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많은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하나의 취미에 빠지면 프로급 수준까지 파고드는 집요함과 열정도 부러웠다. 그녀의 외동딸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이수지'씨다.
파도야 놀자 - 10점
이수지 지음/비룡소
<파도야 놀자>라는 책을 처음 보고 글자없는 그림책이 이렇게 역동적일 수 있다는 데 놀랐고, 그림책을 그린 이가 한국사람이어서 또 놀랐다. 해변가에서 여자아이가 철썩거리는 파도와 노는 한 때는 그려놓았는데, 잠깐 고개를 돌리면 그림 속 아이가 바다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이 너무나 그림이 싱싱하다. 그녀는 딸의 이 그림책이 나왔을 때 그림책의 그림과 똑같이 수를 놓아 액자에 넣어서 선물했단다. 얼마나 멋진 축하선물인지... 내 취미도 이런 역할을 할 날이 꼭 오길 기도한다.

이 책에서 또 하나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엄마처럼 살고싶어."라고 이야기한다.
딱 저자의 모습처럼 열정적이고 반듯한 그녀의 어머니. 저자는 그런 어머니를 존경하며 흠모하고 저자의 딸 또한 저자에 대해 같은 마음을 품는다. 나도 대다수의 많은 딸들처럼 "엄마처럼은 안 살아!"라고 외쳤던 사람이기에, 순순히 흘러나오는 저자의 저 고백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처음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어떻게 하면 그녀처럼 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쉽게 결론을 지어버렸었다. 선량한 부모님 밑에서 모자람 없이 사랑받고 자란 사람의 모습이라고. 다 어린시절과 환경 탓이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녀가 한 노력은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좋은 환경에서도 삐뚤어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판자집에 살아도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내 인생을 어찌 흘러가게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결국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아픔이라곤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삶에도 두 아이를 잃은 슬픔이 있었다.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왜 아이를 한 명만 낳았을까? 하며 내내 의아했는데, 책 후반부 즈음 세 아이중 지금의 딸만 곁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스치듯 털어놓는다. 뉘앙스로 보아서는 유산이거나 아주 어렸을 때 사망한 것 같다. 이 때 그녀가 흘렸을 눈물을 우리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맞다. 그렇기에 모두들 번민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 아픔을 딛고 곧게 성장할 것인가 꺾일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오늘도 날카롭게 일어선 마음을 다독여 본다. 나도 언젠가는 마음에 무성한 이 가시밭을 꽃밭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넉넉히 품을 날이 오겠지.
그래, 오도록 만들자. 그렇게 선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