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 - 내 생각과 행동의 주인은 누굴까 본문

삶이 글이 될 때/읽고 보다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 - 내 생각과 행동의 주인은 누굴까

고래의노래 2011. 2. 15. 14:33

    내가 요즈음 몰입하는 사상가는 두 사람. 칼 융와 에리히 프롬이다. 칼 융은 이부영이 쓴 <자기와 자기실현>을 읽고 눈이 번쩍 뜨여 사랑하게 되었고,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을 읽고 빠져들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 내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근원성에 집중하여 의문점을 해결하려 한 점이고, 두번째는 '실천하는 이성'이었다는 점이다. 논리와 이성의 영역에서 쉽게 배제되고 무시되는 근원과 이상향에 대해 이들은  끊임없이 추구하는데, 그로 인해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보이는 '깨달음'의 면모가 보인다. 

  '실천'은 내가 지성인들을 감히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혹자는 "화살표가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갈 필요는 없다."라며 일부 지성인들의 사상과 삶의 괴리를 옹호하기도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위해 갈림길에 꼿꼿히 서서만 있을 필요는 없다.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것들 - 10점
라이너 풍크 지음, 김희상 옮김/갤리온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제자가 그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그 배움을 통해 자신이 발전시킨 개념을 소개하고, 개인적으로 만난 에리히 프롬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개인의 합으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 작동하는 유기체로서의 사회를 인정하고 이것이 개인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를 영향력을 깨닫고 스스로 일어나 독립적인 삶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방법으로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잠재의식과 만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깨달은 후에는 생산성을 실천하여 일차적성향에 이른다.(자립) 프롬이 이야기한 '독립성'은 '고립'과는 분명 다른 이야기이다. 그는 관계맺고자 하는 욕구를 인간의 실종적 욕구 중 하나로 봤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독립성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삶을 개척하는 '주인의식'이다.

   저자가 새롭게 추가한 성격유형인 '자아지향성'도 흥미롭다. '쿨함'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있는 요즈음 사람들의 무기력함과 기술의존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들어온 말은 이랬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는 이 명제에 더 힘을 싣는다. 저 멀리 중동지역의 분쟁이 내 지갑을 들썩이게 만든다. 그런데 정말 본래 이 말이 "우리는 서로 의존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서로 돕고 살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비단 나라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작게는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 이 이야기는 <가족심리학> 이라는 책에서도 똑같이 이야기되고 있다. ☞ 가족심리학 - 주체적인 어른만이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

   올 한해 세워둔 목표 중 하나가 '자서전 쓰기'이다. 위인전 형식의 자서전이 아니라 내 과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고 그 과거가 지금의 나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기억목록'의 형식으로 쓰고 있는데,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이것이 '스스로 서는 나'를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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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의 관심
-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홀로 있지 않으면서도 나라는 개인을 가질 수 있을까?

사회적 행동을 낳는 충동은 프로이트가 가정한 것처럼 성적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라 사회화 과정의 산물, 즉 인간이 처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이다. 인간을 충동적인 존재로 보지 말고 관계함의 존재로 파악해야 한다.

프롬은 사디스트 아버지가 매를 드는 이유가 사회화 과정 안에 있다고 봤다.
사회가 사디즘 충동을 키우도록 요구하고 장려했기 때문. 체벌은 권위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유물, 권위주의 사회에는 이른바 암묵적인 상식이 존재한다. 권력에 복종하는 온순한 시민을 키워내고자 폭력을 행사하는 것 뿐 누구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상식.

성격 - 개인 혹은 다수의 사람들 마음 속에 형성되어 있는 감정이나 충동의 구조
우리의 느낌, 생각, 행동은 상당 부분 내면에 자리잡은 목표를 향한 갈망과 열정에 이끌린다. 바로 이런 갈망과 열정이 '성격특징'이다.

<성격의 역동성 이론>은 성격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데서 출발한다. 한 사람이 가진 여러 성격은 그것들을 한데 묶어주는 근본적인 '자향성' 즉 '성격지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격지향성을 깨달아야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프롬이 성격이론으로 밝히고 싶었던 것은 개인이 성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개인만의 상황 못지 않게 사회 공동체의 유지에 필요한 여러 가치들이 함께 어울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개인 성격><사회성격> 우리가 관계를 맺으려 들이는 많은 노력과 감정이 사회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의 성공, 즉 성공적 삶이란 자신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각자 자신이 가진 생산적인 고유한 힘을 실천에 옮기는 것. 그렇게 해서 일차적인 성향을 실현해 가는 것. 프롬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것은 사회 성격 지향성이 사회의 성공은 물론이고 개인의 성공까지 이끄는 것.

1. 잠재의식과 직접적인 만남

내가 곧 상대방이 될 때....나와 상대방 사이에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관계'가 형성된다.
=> 이러한 만남의 자세를 '직접적인 만남'이라 표현 :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개념, 상상, 불합리한 느낌, 충동, 격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만남
직접적인 만남을 위한 전제 조건
-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다.
-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경청한다.
- 타인의 전인격을 체험하려는 사람은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심리장애와 갈등의 원인은 잠재의식의 반작용이다. 의식과 충돌하는 이 반작용이야말로 의지와 행동 사이의 모순을 낳는 원인.
잠재의식은 보편적인 인간, 즉 인간 전체를 대변한다.
잠재의식에 이르는 길로 우리가 인간다움에 접촉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인간다움 전체와 만나게 되면 이제 내가 아닌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내 잠재의식(전인격)과 만나는 4가지 방법
1. 꿈 - 억압된 감정
꿈을 꿀 때 인간은 사회가 덧씌운 한계를 멋어나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2. 자발적 연상 - 문득 떠오른 생각
'순간'을 활용
"집중해서 아버지를 떠돌려 보세요.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눈을 감고 아무 생각없이 있으라고 하다가 감자기 "지금!"
3. 실수
실수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수에 대해 자꾸 토를 달면 잠재의식과 의식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경우
4. 전이
집착은 내 불안의 고백이다.
우상을 쫓는 헤맴


2. <생산적인 성격 지향성> - 존재로의 지향
생산성 - 인간의 고유한 기능성을 실현하는 것. 인간이 가진 고유한 힘(이성, 사랑, 창의성)을 펼치는 것

비오필리에 - 성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성향, 생명에 대한 사랑 (<-> 네크로필리에)

1) 생산적 노동 :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적으로 꾸미는 능력
노동의 생산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인간의 고유한 힘이 잘 발휘되어 당사자를 성장시키는가 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 개인의 재주나 솜씨 들과 얼마나 어우러지느냐

2) 생산적 사랑 : 사랑으로 관계를 이끌어 가는 능력
다른 모든 사람, 더불어 자연과 하나됨을 체험하는 것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당사자의 독립성이 보장될 때 가능.
-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마음과 책임감
- 상대를 향한 존경심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이해심
- 상대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적당한 거리
- 이웃사랑과 자기사랑의 합치
- 서로 나눌 줄 아는 마음과 자신을 열어보일 줄 아는 자세
- 상대의 모든 일에 관심
- 경청할 줄 아는 자세
- 상대를 신뢰하는 자세

3) 생산적인 이성 : 현실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능력
자신이 보는 세계와 현실세계가 합치하도록 노력하는 이성적인 자세

우리가 만약 나치즘, 홀로코스트 등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해 '결단코 안돼!'라는 태도를 고집한다면 우리의 내면은 여전히 당시의 파괴성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런 태도로는 파괴성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 벗어나려고 악착스럽게 싸우다 보면 마음의 힘은 소진되고 정작 성장할 힘을 잃고 만다. 폭력과 무력의 연쇄고리를 끊을 수 있는 희망은 오직 한 가지다. 우리는 다시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보듬을 줄 아는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

3. 일차적 성향

정신건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실존적 욕구(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뿌리를 내리고픈 소망, 자신의 정체성을 체험했으면 하는 바램)를 만족스럽게 풀어줄 해답을 찾는가 하는 것.

인간 안에는 정신건강을 키우기 위해 추구할 만한 가치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바로 이런 성향,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저장해 두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타고난 성향 - 일차적 성향
-> 여기에서 프롬이 쓴 일차적이라는 용어는 프로이트가 삶의 충동을 죽음의 충동 등에 대해 근본적인 충동이라는 의미에서 쓴 일차적과는 다른 의미. 일차적 성향이 방해를 받으면 부차적 성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을 지적하려 한 것.
 
타고난 일차적인 성향을 막힘없이 꽃피우는, 그래서 자신이 가진 몸과 마음, 정신의 성장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생산적인 성품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은 타자의 힘에 의존하는 일 없이 확고하고 견실하게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런 자립성은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느끼며 상상하고 행동하면서 인생을 개척하게 만든다.

4. 저자가 추가한 성격지향성  - 자아지향성

갈수록 사람들은 통제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과 주변현실을 스스로 결정하고 꾸미려는 강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율성이나 독립성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자아지향성'이다. 무자피하다 싶을 정도로 기존의 것을 무시하고 삶을 새롭게 연출하려 함. 현실보다 연출에 목을 맨다.
- 모든 새로운 것에 열광
- 신기술을 받아들이며 창의성이라고 생각
- 냉소적, 기존의 것을 비웃음
- 감상적인 것에 열광, 이 때 감정은 드라마와 같이 연출되어 주어진 것.
- 일시적 만남이 성행
- 긍정적인 것에 목말라 한다. 마찰이 빚어질 일은 피하고 본다.
대기업의 광고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주범
기술의 도움으로 자신의 주변을 더 흥미롭게 화려하게 꾸민다. 그에 견주면 인간의 본래 힘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기계에 의존하니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꼭 필요한 일차적 성향이 자라지 못함.

5. 자기 자신을 깨닫고 독립적인 삶에 이르는 훈련

*집중력 훈련
- 하얀 평면을 떠올려 본다. 그 사이 자구 끼어드는 장면이나 생각을 몰아낸다. 그런 다음 자신의 호흡을 그대로 느껴본다. 자신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에 관해 생각하거나 강제로 바꾸려고 하지 말라. 그저 편안하게 자신의 숨결을 따라가라.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감지하라.
- 긴장을 푼 자세로 눈을 감는다.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마치 앉은 자세의 파라오 조각상과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천천히 한쪽팔을 45도 각도가 되도록 들어올린다.
-불교의 참선
*명상
*자기분석

- 6개월정도 정신분석을 통해 입문하는 것 추천, 자신의 특이증상 관찰, 자서전
어떤 방식이든 잠재의식에 빠져드는 경험은 나르시시즘을 유발할 수 있다. 거기에는 부풀려지고 확장된 자신의 자아 외엔 아무것도 없기 때문.

자기자신에 대한 깨달음, 세상을 향한 거부감을 줄이는 일, 탐욕을 버리고 진정 자신을 키워가려는 노력. 이렇게 명상과 집중력 훈련을 통해 한걸음씩 나아갈 때 온전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