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행복의 정복> - 러셀, 80년 전에 미래의 행복을 예언하다. 본문

삶이 글이 될 때/읽고 보다

<행복의 정복> - 러셀, 80년 전에 미래의 행복을 예언하다.

고래의노래 2011. 11. 11. 17:56
행복의 정복 - 8점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사회평론

무려 80년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런데 오늘 날의 삶에 대입해서 읽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특히나 <좋은 부모>에 대한 챕터는 딱 요즈음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간단하게 행복의 조건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충분히 느낄 것.
- 관심의 초점을 밖으로 쏟을 것.
- 자신의 안에서 우러나오는 목적과 그에 따른 열정을 가질 것.
- 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할 것.
- 우주의 존재 안에서 자신의 걱정이 하찮은 것이라는 것과 자신의 생이 무한히 흐른다는 것을 자각할 것.
- 부모노릇은 인생의 한 부분임을 기억할 것.

아래에는 인상깊은 구절들을 뽑아 정리해 보았다.
세대를 초월한 지식인의 혜안에 감탄할 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자연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와 반대로 대도시의 생활은 인간의 분노 기제를 자극한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현대의 부모들은 이런 점에서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영화 구경이나 맛있는 음식같은 수동적인 오락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다. 부모들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린 아이는 주로 자신의 노력과 창조력에 의지해서 스스로 환경으로부터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영화 구경처럼 재미는 있지만 육체적인 활동이 전혀 수반되지않는 오락거리를 어린아이들에게 자주 제공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특별한 권태는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삶은 여행할 때처럼 답답하고 갈증에 시달린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는 늘 낯선 사람들과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적 본능때문에 낯선 상대를 만날 때마다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상대를 탐색한다. 혼잡한 출근시간에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본능을 억제해야 하고 본능을 억제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들 일반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게 된다. 

▷ 요즈음 늘어나는 어이없는 지하철 내 폐륜 사건들이 모두 이런 데서 비롯된 건 아닐까? 


2. 행복은 합리적인 이성의 힘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성찰에 몰입하는 것은 오히려 이것을 방해한다.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그러나 매우 집중적으로 그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들게 된다. 이러한 친밀감이 생기면 마침내 두려움의 칼날은 무뎌지고 모든 문제가 따분한 것이 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정신적인 통합이란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 등 인간 의식의 다양한 충돌이 갈등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끊임없이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킨다....인격의 여러부분들 간에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들이는 시간은 쓸모있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자기 성찰을 위해서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을 내라는 이야기는아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조화를 이룬 인격은 바깥을 향하는데, 자기 성찰의 시간은 고쳐야 할 질병인 자아몰입의 기회를 늘리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서 확고한 결심을 세움으로써 근거없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출몰하기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생각에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순간에 자신을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단호한 설득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성공할 것이다. 따라서 조화로운 인격을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 '생각'이 일인 철학자답게 논리적인 생각의 힘을 무한 신뢰했다. 요즈음 마음은 심장이 아닌 뇌에 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으니 (최근 그 반대 이론도 다시 주목받는 듯 하다.)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생각 → 행동'으로의 연결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생각의 힘을 주장했으면서 자아성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내면으로 몰입하기 보다 외부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인데 확실히 동의한다. 자아성찰이 취미인 나로써는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


3. 자신이 스스로 삶을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로부터 이 결정에 대해 억압이나 탄압을 받지 않아야 한다. 표현의 상냥함으로 이를 극복할 수도 있다. 

일탈적 언행이 명랑하고 태평스러운 태도, 즉 반항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태도로 행해진다면, 아무리 관례를 존중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이런 정도의 일탈은 허용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이들에게 세상이 다 아는 괴짜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른 사람이 그런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일도 그 사람이 하면 눈 감아줄 것이다. 일탈적인 언행이 용서받느냐 마느냐의문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상냥하고 붙임성있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런 행동은 누가 봐도 다른 이를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관례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일탈행도에 격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이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바람을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나이많은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삶이기 때문이다....일단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되면, 나이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똑같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 필요하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권리가 있다. 어떤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이많은 사람의 압력에 굴복하고 마는 젊은이는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행복의 필수조건은...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

언론이 가하는 박해를 막을 수 있는 치료법은 단 하나. 대중이 관대한 태도를 기르는 것뿐이다. 대중에게 관대한 태도를 기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서 다른 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데서 으뜸가는 즐거움을 찾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 스스로 선택한 삶을 긍정하는 방법으로 러셀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교류를 추천했는데, 오늘날에는 교통의 발달로 오히려 이 부분에서의 제약은 많이 없어진 상태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여론이 가하는 '얼굴없는 폭력'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해결책을 내지 못한 채 '행복한 사람들을 늘리는 것'이라는 지극히 이상적인 방법만을 제시했다.


4. 관심은 행복의 출발이다.

굳이 애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의 비결은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인 경우가 많다.

▷ 내가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 모두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 무관심이 기본인 나에게 이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성향 중 가장 바꾸고 싶은 부분이다.


5. 사회적 상황은 아이를 키우기 어렵게만 되어가고, 넘쳐나는 이론들은 부모노릇을 힘들게 한다. 결국 부모가 된다는 것은 행복과 멀어지는 길이 되고 말았기에 출산율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 유구한 생명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만이 자녀를 통한 충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부모 자식 관계가 명령-복종이었으나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확산되면서 부모들은 확신을 잃었고 정신분석 이론을 알게 된 부모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식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무서워한다. 이제 부모 노릇은 겁나고 불안하며 양심에 걸리는 고민거리가 많은 일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으니 출산율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앞으로는 공적인 의무감에서 자녀를 낳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남녀가 자식을 낳는 것은 자녀가 자신들을 더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믿고 있거나 피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모노릇이 부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곧 인생의 막을 내릴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최초의 세포로부터 멀고 먼 미지의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미래에 확고한 흔적을 남길 만큼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일을 통해 이 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남녀들은 자녀를 통해서만 이러한 감정을 충족시킬 수 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큰 부담 - 여성이 직업을 갖게 된데다 가사노동 대행 서비스의 질적 쇠퇴.
공들여 자녀양육에 관한 지식을 쌓은 여성이라면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청결과 위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예방 조치를 남에게 맡기려면 재난을 부를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데 아파트에는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장소도 없고 부모가 어린이들의 소란을 피할 장소도 없다. 따라서 전문직 종사자들은 교외로 나가는 경향이 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남편들이 겪어야 하는 생활의 피로는 늘어나고 남편이 가정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줄어들게 된다.

▷ 남에게 아이를 맡기기 불안한 상황과 아파트가 아이를 키우기에 부적절한 공간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벌어지는 교외로의 이탈과 이로써 해체되는 가족 등...1930년대의 이야기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건 딱 2011년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6. 넘쳐나는 양육 이론에 휘둘리지 말고, 자녀를 존중한다는 큰 원칙 앞에서 마음가는 대로 따라가도 충분하다. 부모노릇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도 필요하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가지는 특별한 가치는 다른 어떤 사랑보다도 믿을 만한 사랑이라는 데에 있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바뀌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누구와 같이 있을 때보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현대의 부모들은 자녀를 다룰 때 지나치게 자신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부모는 무의식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보다 자녀에게 훨씬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는 편이 더 낫다.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는 식의 정신분석 교과서는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모는 그저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다 보면 올바른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부모 노릇하면서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있다.
부모노릇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일부분일 뿐인데 그것을 인생의 전부로 여긴다면 만족을 얻기 어렵고 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는 욕심 많은 부모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되었다고 해서 여러 가지 관심과 직업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어머니에게도 이롭고 자녀에게도 이롭다.
다른 여성이 훨씬 잘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어머니들이 각자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낡은 인습도 버려야 한다. 자녀들을 다루는 일에 좌절감이나 무능함을 느끼는 어머니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서슴치 말고 이 일에 적성이 맞고 필수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자녀를 맡겨야 한다.

▷ '자녀를 다루는 일에 좌절감이나 무능함을 느끼는 어머니'... 바로 나이다. -_-;;; 요즈음은 아이와 잘 놀아주는 사람이 제일로 부럽다. 에휴. 러셀의 글에서 위안은 조금 받았지만, 여전히 내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차라리 나 스스로를 연구하고 나의 미래를 그려가는데 집중하는 것이 나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