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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나는 아직 비겁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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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나는 아직 비겁하다...

고래의노래 2011. 3. 28. 22:45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8점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레디앙

나는 아직 비겁하다. '아직'이라고 쓴 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기고 싶어서다.

살가운 공동체를 꿈꾸지만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자연과 벗하기를 꿈꾸지만 화분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며,
편견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아직도 외적 정보로부터 빠른 판단을 내려버리기도 한다.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만, 바뀐 세상에 살짝 내려앉고만 싶은 마음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존경하는데 저자는 딱 그런 사람이다.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자신이 열정을 쏟을만한 '분야'를 찾았고, 열정을 쏟을만한 '사람'을 찾았고,  그와 '연대'하며 조금씩 세상을 바꾸면서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나는 결혼은 사회가 구성원들을 손쉽게 관리하기 위해 활용하는 쓸데없는 제도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결혼을 했다.
주인공이 소외되는 형식적인 결혼식을 비판했지만 결국 나의 결혼식도 돗때기 시장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간판만 내달고 주례를 맡는 것도 혐오했는데, 나는 주례를 결혼식 때 처음 보았다.
(남편 외삼촌의 동창이었는데, 결국 그 분은 주례를 시작하며 '신랑, 신부를 알지 못함에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길게도 늘어놓았다.)
사실 주례 대신에 부모님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신랑, 신부에게 선배로서 덕담을 해주는 것을 꿈꿨는데, 이건 부모님께 제안도 드리지 못했다.
결혼식에서 내 마음대로 한 것은 화환을 거절한 것 뿐이었다.

아기가 중심이 되는 르봐이예르 분만을 꿈꿔왔지만,
이름만 그렇게 내 건 산부인과에서 나는 지난 수십년간 임산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긴 침대에 누워 힘을 줘야 했다.
아기는 잠깐 나에게 넘겨졌다가 바로 실려 나갔고, 내 태반에 대한 기증 동의서만이 내밀어 졌다.
(그 태반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동의서에는 분명 의학 연구를 위해 사용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그 비싼 태반주사는 누구의 태반으로 만든 것이란 말인가?)
내 마음대로 한 것은 무통분만을 거부한 것 뿐이었다.

이것은 사족이지만, 저자가 무통분만을 선택했다고 했을 때 굉장히 놀랐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통분만을 선택했기 때문에 안타까웠던 점에 대한 설명이 내 생각과는 달라서 놀랐다. (사실 나도 산통을 오래 겪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으므로.) 그녀는 "앉거나 엎드려서 아이를 낳는 자연스런 분만을 포기해야 하므로" 안타까웠다고 한다. 약이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염려는 안 한 듯 보였다. 임신했을 때 감기약 한 번 먹는 것도 벌벌 떠는 엄마들이 "마취약'를 직접 투약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통분만을 통해 나온 아이들은 약물중독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조사도 있다는데.

내가 아직 변하지 못한건 두 가지 때문일 거다.
-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아직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 나는 여전히 주변인들에 의해서 서 있을 뿐, 자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등, 자유, 자연스러운 삶 등이 내 삶 속에 소중한 가치들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아직 다 소화하지 못했다. 자유경쟁, 경제발전의 논리 앞에서 차분하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들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당위'를 알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답답해지기만 한다. 남에게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것. 내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리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은데, 아직 나는 생각만 풍선처럼 부풀어있고, 이를 유연하게 풀어내는 법을 알지못한다. 즉 삐걱거리는 갈등을 못견뎌한다. 갈등을 못견뎌한다는 것은 주변사람이 나에 대한 '사랑'과 '지지'를 거둬들이는 것에 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따라 나의 중심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신적 자립'은 내가 이뤄야할 오랜 숙제이다.

조만간 갈등을 극복하고 바로잡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 윤우에게 아버님이 장난감 권총이나 칼을 사주는 것을 막는 것.
- 명절에 아빠와 엄마가 똑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잘 해결하고 싶다. 마음은 단단하되 소통은 유연하게..그렇게 똑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