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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나무와의 마지막 인사

고래의노래 2009. 9. 23. 15:46
윤우가 아침잠을 자고 일어나는 9시쯤, . (6시에 기상했다가 8시에 다시 잠이 든다.) "윤우야~우리 나무한테 아침 인사하러갈까?" 하면서 아파트 복도로 나간다. 실평수가 작아진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지만, 복도형 아파트의 좋은 점은 문만 열면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지은지 꽤 오래된 우리 아파트는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 5층인 우리집 바로 앞에도 키 큰 소나무들이 있는데, 나뭇잎과 가지들이 손에 닿을 정도지. 복도에 나갈 때마다 그 나무의 잎을 윤우에게 만져보게 하면서,
"윤우야, 나무한테 잘 잤니? 라고 인사해."
"윤우야, 오늘은 나무가 살랑살랑 손을 흔드네~"
"윤우야, 비가 와서 나무가 기분이 좋은가봐."
라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 주었었단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이름모를 산새들까지 그 나무로 몰려와서 짹짹거리며 파닥파닥거려서 윤우가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했어. 그렇게 그 나무들은 윤우에게는 참 가깝고 친근한 '자연'이었지.

그런데, 오늘 오후에 다시 윤우와 복도에 나가보니...나무가 잘려져 있었어. 나무들이 안보이는 풍경에 뭔가 낯설어서 0.5초간 사태파악이 안되고 엄마가 다른 곳에 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무들이 잘린 거였어.

정말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단다. 나무를 자르는 건 누가, 어떤 이유로 결정한 걸까. 이렇게 나무 가까이에 있던 우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는데...

힘없이 자신의 윗동을 잘려야 했던 나무들. 그들이 질렀을 소리없는 비명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단다. 그 나무들은 꼭대기 부분을 제외하고는 꽤 많이 시들시들했었어. 꼭대기에 새로 내는 가지와 잎새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부분들만 잘리고 이제 파리한 밑부분만 남았지. 나는 너무나 가슴이 먹먹해서
"윤우야, 나무들이...잘렸어.. 나무.. 이제 안보이네..."
하며 윤우를 꼭 끌어안았단다. 영문도 모르는 윤우는 눈만 깜빡깜빡.

나무들...다시 윗동에 싹을 피우며 자라나겠지. 생명은 힘이 세니까. 그러리라고 믿는다.

힘든 하루를 견뎠을 나무의 오늘 밤이, 부디 편안하길.
윤우도 꿈 속에서 나무를 보듬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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