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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 부모, 학교 그리고 국가에 던지는 제대로 된 쓴소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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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 부모, 학교 그리고 국가에 던지는 제대로 된 쓴소리

고래의노래 2010. 3. 24. 23:18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 10점
김은하 지음/현암사

이제까지 읽어 본 자녀 독서 지도 관련 서적 중 가장 폭넓은 시각을 가진 책이다. 또한 가장 분명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독서 지도 관련 책들이 아이와 책과의 관계에만 집중해서, 아이의 발달 단계와 좋은 그림책 고르는 기준을 설명하는데 치중하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아이와 책 사이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다.

독서환경을 가정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학교, 서점은 물론 아이가 무료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공간(병원, 미용실, 식당 등)으로 확장시켜 설명한다. 특히 대형서점에서 어른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한 자료에 아이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과 미용실에서 여성잡지를 읽으며 값싼 성교육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점에 가는 일은 무조건 좋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이 전문 서점과 어린이 전문 도서관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고려하게 되었다.

또한 도서관 환경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도서관 예산의 문제와 도서관이 평생학습관으로 '전락'하며 순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했는데 평생학습관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았던 나는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국가가 책읽기 캠페인으로 구린 행정 실태를 미화했었다니, 배신감이 든다. 올바로, 제대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점점 힘들어진다. 정신 잘 차려야겠다.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에 이토록 뜨겁게 공감한 건 실로 오랫만이었다. 이건 그만큼 저자의 주장이 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반듯하고 정직하게 살면서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가족은 따뜻하게 보듬는 저자의 모습은 꼭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정말 가능하다면 찾아 뵙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 이 책이 나에게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읽었던 독서 지도 책 중 유일하게 자녀가 아들이었다는 데 있다. 그림책 육아를 실천하는 육아서들은 많지만 푸름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여자아이를 자녀로 둔 저자가 쓴 책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책과 함께 잘 키우는 건 무리인걸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저자처럼 나도 윤우를 단단하고 강하게 키우고 싶다. 아래는 강한 아이로 키우는 좋은 에피소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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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혼자 해가기
* 한복 입는 법 알아 보기 : 집에 마땅한 자료가 없어 아이는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했다.
* 내 고장의 유적지 찾기 : 아이는 혼자 동사무소에 가서 구청에서 발행하고 있는 홍보 자료를 얻어 왔다. 낯선 어른에게 자기가 온 목적을 밝히고 필요한 자료를 달라고 부탁하려면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 고장의 특산물 조사하기 : 내친 김에 인터넷을 검색하는 기술적인 방법만 가르쳐 주었다. 그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했다.
*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세무서의 위치 알아내기 : 낮에 노느라 숙제 하는 것을 깜빡 잊은 아이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숙직 공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방학이다. 아침부터 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114의 교환원과 대화하는 참이다. 아이는 며칠째 아침마다 전화를 건다. 자기가 조립한 모형 자동차로 자동차 경주에 나가려고 대회 일정을 아아 보는 중이다. 아이는 우선 모형 자동차를 주로 파는 가게에서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첫 날, 자기가 가진 조립식 모형 자동차의 회사 이름을 댔다. 나와 있는 전화번호가 없다고 한다. 그 다음에 전화 걸 때는 가본 것의 이름을 대고 자신의 찾는 가게가 어떤 물건을 취급하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드디어 영등포에 있는 점포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는다. 그 다음 날에도 전화를 받지 않자 다른 지역의 가게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또 전화를 걸었다. 대회는 8월 18일 잠실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다. 아뿔사!  그 날 집안에 일이 있다. 아이는 다시 전화를 걸어 다음 대회 일정, 참가비, 출전할 수 있는 자격 조건 등을 다 알아냈다. 내 소감을 말하자면 "녀석, 어디 가서 굶지는 않겠구나!" 그리고 아이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준 114 교환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교육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한다.' 이 말은 조사 숙제에도 걸맞은 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