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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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글이 될 때/역량키우기 활동

<나를 찾는, 여성주의 글쓰기> 강연 기록

고래의노래 2018. 4. 25. 13:16

* 평범한 우리가 글을 써야하는 이유


 남부권역 젠더거버넌스 성평등 교육 입문강좌, 마지막 강연은 <글쓰기의 최전선>, <싸울수록 투명해진다>의 은유 작가님을 모시고 <나를 찾는, 여성주의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연은 많은 분들에게 강연 제목만으로는 주제가 쉽게 와닿지 않았었나 보다. ‘여성주의와 글쓰기는 무슨 연관이 있는건지’, ‘그냥 글쓰기가 아니라 ‘여성주의 글쓰기’라는 건 또 뭔지’ 문의가 들어오곤 했다고 한다. 여성주의라는 사회참여형 단어와 글쓰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어디에서 만나 조합을 이룰 수 있는 건지, 이게 성평등 사회를 이뤄가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강연을 들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님께서 글쓰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인생의 한 챕터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강연은 글쓰기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글을 써야하며 어떤 태도로 글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으로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아래 강연기록은 작가님의 시점으로 기록하였다. 




 

1. 글쓰는 삶을 선택하기까지

집안의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내가 다시 경제활동을 해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나를 불러주는 일들 중 ‘어떠한 일’을 하며 내 시간을 담보잡힐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친정엄마의 죽음을 겪으면서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고 돈을 조금 벌더라도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사보의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보기자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느낌이었고 이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겪는 불안, 짜증 우울 등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썼다. 하지만 감정을 분출만 하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보완책으로 시를 곁들였다. 이 블로그 글들이 출판편집자의 눈에 띄어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책을 처음 내게 되었다. 


2. 무엇을 쓸까


 속상한 일에서부터 시작하라. 내가 힘든 건 타인에게 ‘말’하면 일반화가 되지만 ‘글’로 쓰면 나의 것이 된다. 삶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며 불행에 머무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질문하고 회의하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여성은 생활세계와 자기정체성의 이중성 안에 있다. 그래서 나도 항상 답답했고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생활 속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었다. 사람은 불편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한계짓는 조건들이 우리를 예민하게 깨어있게 하며 스스로를 찾는 출구가 된다. 

 글쓰기의 핵심은 감정만이 아니라 감정까지의 과정을 쓰는 것이다.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자. 나에게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글이 좋은 글이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라는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글은 결국 싸움의 기록이며 싸우면서 우린 스스로를 알아가게 된다. ‘내가 뭘 원하지?” “내가 뭐가 불만이고 불편하지?” 라는 질문 속에서 인식이 투명해지는 것이다. 결국 감정에서 시작해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글이 되어야 한다. 



3. 어떻게 쓸까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은 써라. 높은 자의식은 글쓰기의 장벽이다. 막막하면 ‘한 명의 독자’를 설정해놓고 쓴다. 잘 쓴 글은 한 편이 하나의 완결성을 갖추어야 하며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글이다. 중요한 건 경험 자체보다 경험의 해석과 의미이다. 경험을 통해 내 생각이 깨진 걸 알려주는 글, 필자의 성장이 보이는 글이 좋은 글이다. 글쓰기는 자기에게 몰입하되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야 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뭘 하나 시작한다고 다 성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성공’의 기준은 또 무엇인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우리가 다 박완서가 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자기억압과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만약 책을 내고 싶다면 책 자체가 아니라 왜 내가 책을 쓰고 싶은지 그 목적의 지향을 생각해야 한다. 조급함도 의무감도 벗어버리고 일상의 경험에서 출발해 하루 한 편 꾸준히 10년 동안 써보자. 주류가 아닌 평범한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강연을 시작하며 작가님께서는 여성주의와 글쓰기는 상호보완적라고 이야기하셨다. 이미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여성주의와 글쓰기의 접점에 대해 확실한 도장을 찍어주신 것이다. 불편함은 사람들을 사유하게 만들고 이것을 글로 쓰다보면 주변 사람과 상황, 그리고 나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여성들이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많은 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것들이다. 그것을 경험 속에서는 미처 알지 못하더라도 ‘자기에게 몰입하되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는’ 글쓰기를 하다보면 내 감정과 경험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널브러진 빨래는 나에게만 보이고 다른 가족에게는 보이지 않는건지’, ‘일하며 아이들 밥 챙겨주기 힘든데 나는 왜 이 힘든 걸 바꿔보려하지 않는지’같은 나의 불편한 감정들이 글쓰기라는 사유를 통과하여 다다르는 지점들이 모이면 사회적인 이슈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고 대단한 무엇을 이룬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여자사람’으로서 작가님께서는 글을 쓰고 책을 내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목소리들이 더 많이 세상으로 나와야한다고 강조하셨다. 


 10년 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글의 힘을 알게 되었고 작년에는 작가님의 책을 읽는 책모임까지 만들었던 나로서는 은유 작가님을 직접 뵙고 강연을 들은 것이 매우 뜻깊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뒤늦게 페미니즘을 알게 된 과정에서 10년간의 글쓰기가 한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글로 쓰면서 내 삶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 ‘눈’으로 주변과 세상을 다시 바라보며 또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4번의 성평등 입문 강좌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여성의 눈, 페미니즘적인 시각이라는 커다란 맥락 안에서 소통, 교육, 언어, 글쓰기라는 다른 주제들이 펼쳐졌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함께 해주어야 하며 생활 속 불편함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글쓰기로 내 삶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듣고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달라보이는 주제들 속에서 강사님들께서 한결같이 이야기했던 것들이 있었다. 


- 함께 모일 것.

- 함께 배우고 이야기하고 쓸 것.

- 그러면서 나, 너 서로를 알아갈 것.


 ‘여성의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는 이렇게 함께 모여 스스로의 ‘관점’을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연 후에 참석자분들께 작은 노트를 한권씩 선물로 드렸다. 이 노트에 참석자분들의 다양한 삶이 펼쳐지길 바란다. 우리의 삶을 다시 우리의 것으로 온전히 되찾는 그 여정에 함께 한 4강의 시간들이 힘이 된다면 좋겠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평범한 언어들이 모여 성평등한 세상을 위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