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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성평등 교육> 강연 기록

고래의노래 2018. 4. 19. 19:20

성평등한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

 

 남부권역 젠더거버넌스 성평등 교육 입문강좌, <여성의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그 두번째 강좌는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한 성평등 교육>이라는 주제로 위례별초등학교의 최현희 선생님을 모시고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유연하고 열린 사고로 미래의 공동체를 준비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본다’라는 강의 부제처럼 아이들이 틀지워지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른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우리들의 뱃속 상황에 맞추어(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자리를 찾아 앉은 뒤 그 상황을 보충해주는 맛있는 간식들을 먹으며 강연을 들었다. 아래는 강연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1. 현재 한국사회의 성평등 민감도에 관한 현실
강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시작점을 제대로 알아야 앞으로의 방향과 행동을 계획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소개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맞닥뜨리고 계신 특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이 사건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단적인 예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안에 교사들로 구성된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인터넷미디어에서 모임을 인터뷰하러 왔었는데, 이 인터뷰 영상이 최현희 선생님 위주로 편집, 제작되어 공개되면서 여혐세력의 공격대상이 되셨다고 한다. 나중에는 논의가 확산되어 동성애 반대 보수단체까지 공격에 합류하였고 선생님 개인을 넘어 직장과 가족에게까지 위협이 이어졌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은 특별할 것 없는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것이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기득권 세력의 높은 불안감, 교사의 중립성에 대한 기대, 초등교사 게다가 여교사라는 낮은 사회적 권위 등이 모두 결합되어 작용한 현상이며 이것이 한국사회가 페미니즘, 성평등을 바라보는 ‘민감한’ 현실이다.
 남녀 임금격차, 고위관료, 간부 중 남녀비율, 가정에서 남녀의 집안일 시간차 등 성평등 지수의 여러 면에서도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 위한 성평등 의제화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발언조차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여자아이가 ‘여성’으로서 길러지기까지 우리 사회의 public pedagogy(공공의 교육과정)
 아이들은 차별에 유독 민감하다. 그런데 이렇게 민감한 아이들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성차별은 은밀하게 작동한다.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그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 세상과 타인에 대해 배우는 것을 public pedagogy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성역할과 관념에 대한 public pedagogy는 심하게 삐뚤어져있다. 유아 애니메이션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소수이며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 배려와 돌봄의 역할이거나 치명적인 팜프파탈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를 통해 남자아이들은 세상은 모험하고 도전해도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배우지만 여자아이들은 내적, 외적인 완벽함에 대한 기준만을 강요당할 뿐이다. 심지어 교과서 안의 삽화나 문장에도 남성, 여성의 성역할이 다양화되지 못한 채 등장하고 있다.
 파랑, 핑크로 일반적으로 양분되는 남성, 여성색은 이미 위계를 가지고 있다. 여자아이들은 파랑이 주어져도 수용하지만 남자아이들은 핑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파랑에 남성성이라는 우월함이 주어진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신체부위가 도드라지는 영상들(아이돌, 광고)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데 학교에서는 여학생들의 몸을 감추어야 할 ‘유혹체’로 간주한다. 구글에서 ‘여동생’, ‘길거리’등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는 같은 의미의 ‘sister’, ‘street’의 검색결과와 확연히 다르다. 한국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3. 남녀차이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은 과연 유의미한가
 ‘여자가 남자보다 말을 많이 한다.’ ‘ 여자는 남자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여자는 남자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하여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유효하게 통용되고 있다. 그 결과 그러한 틀에서 벗어난 여자, 남자들을 소외시키고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됨으로써 아이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4. 학교 현장에서의 페미니즘 교육 사례와 앞으로의 나아가야 할 길
페미니즘 교육이 다른 인지교육보다 힘든 이유는 그것이 지식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시각에 대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페미니즘 강좌를 많이 듣고 책을 많이 읽어도 사회 속에서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성차별을 우리는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훨씬 유연하며 앎과 삶이 연결되어 있다.
 교실에서 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등을 매우 세게 때렸다. 그 순간 ‘왜 남자친구를 이렇게 세게 때렸는지’ ‘여자친구였어도 이렇게 세게 때렸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그 상대가 남자였기 때문에 힘이 더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면 왜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을까에 대해 말하면서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페미니즘 교육은 메뉴얼화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현장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결국은 민주시민 교육이며 이 교육을 담당해야 할 교사가 학교 안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우린 모두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서로 보충해주며 메워나가면 된다. 성차별, 성희롱에 대한 지적을 서로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이 될 때 현실이 바뀌어 나갈 것이다.


강연을 들으며 한국의 성차별 현실이 너무 암담하여 슬프고 좌절스럽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부모로서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또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최현희 선생님같은 분들이 계셔서 한국교육의 미래에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께서는 인터뷰 공개 후 받은 공격 때문에 몸이 많은 안좋으신 상황이었는데 2시간 동안 매우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셨다.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적은 롤링페이퍼를 선생님께 드리며 감사함을 전했다.
 어른인 우리가 성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구분짓지 않는 ‘성평등 감수성을 지닌 인간’이 먼저 되야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많이 공부해야 하고 학교 안의 선생님들도 그러한 공부가 가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른들도 결국 아이들의 환경, public pedagogy의 한 요소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알려주신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았다. 도서관에서 도서관 유모차를 안내하는 현수막에 ‘책을 읽는 엄마도, 아직 걷기 힘든 아기도’라는 문구가 적힌 것을 보시고 선생님께서는 ‘유모차를 이용하는 것은 엄마뿐만이 아닙니다. 보호자라는 말로 바꾸면 좋겠습니다.’라는 포스트잇을 붙이셨다고 한다. 그러자 다음 번에 갔더니 ‘책을 읽는 보호자도’라고 문구가 변경되어 새로 현수막이 달려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지적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고는 한다. 하지만 부족한 것을 알게되는 것은 성장을 위한 발돋움이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앞당겨 그 삶을 현실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은 함께일 때 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공부’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