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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 그 해결방법에는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필요없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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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 그 해결방법에는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필요없을까?

고래의노래 2008. 6. 19. 12:10
14만 4천명이 파피용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천년동안의 여행을 한다.
 
그 여행을 준비하기까지의 지리한 기술적, 사회적 싸움와
여행을 하는 도중에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변화
그리고 목표달성 후 겪게되는 예상 외의 사건들.
 
책 내용은 이렇게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큰 줄기내용은 생존과 변화를 향한 시도가 결국은 도돌이표 행진이라는 이야기.
매트릭스의 결론과 맥락이 같다.
 
하지만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면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의 끈은 놓지 않는다.
이래나 저래나 우리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 외에 꿈꿀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
 
불교에서도 해탈에 이르지 못한 생명들이 끝없이 환생을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해탈하여 다시는 환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 방법은 정진을 통해 나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것이고...
 
인류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고
그 결말 또한 거의 동일하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도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미래의 재난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방법이 슬기로우며 인류 모두에게 적합한 방법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가 세상에 노출되었을 때
사람들이 논쟁하는 과정이 재미있는데, 요즈음의 촛불집회 모습과 맞물려 이리저리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이렇게 커진 시점에서
일부 집단만을 승선시켜 지구를 빠져나가겠다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그 아수라장이 눈 앞에 선하다.(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미 우주선이 출발한 이후에도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이 프로젝트의 진정성과 타당성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책의 말미에 "수수께기의 해답"이 불어라는 걸 알고 좀 뜨악했다. -_-
앞에서 한 고민들은 그냥 정말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승선한 사람들은 모두 불어권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일테니...
숫자같은...보편적인 해답으로 만들 수 도 있지 않았을까...
 
책의 저자가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
주인공들이 모두 프랑스 사람들이라는 것.
을 염두해 둔다면 물론 심플한 전개를 위해 저런 진행이 무리는 아니지만,
프랑스 탈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구 탈출 프로젝트인데...아쉬운 마음이었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승선시켰다면 최종에는 6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았을 수도 있다.
언어의 장벽은 평소보다 많은 포용력을 가져오니까 말이다.
 
어쨋든 하나의 소설일 뿐인데 나도 이렇게 프로젝트 전개방법에 대해 종알거리게 된다.
그래도 종알종알 말많은 지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