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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2017년 7월 月記

고래의노래 2017. 8. 21. 14:13

* 회복적 써클 사후 모임 마무리

회복적 써클 워크샵 이후 진행되었던 연습모임이 7월 첫째주를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총 8회였고, 들고났던 5~6명의 멤버 중 나를 포함하여 총 3명이 개근을 했다.
회복적 써클 대화법 연습도 물론 좋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지난 일주일을 정리하며 함께 이야기나누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회복적 써클 대화법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아리송한 부분이 있다. 커다란 갈등 외에 일상생활의 소소한 갈등에 대해서는 사실 적용이 쉽게 느껴지지 않고 그게 회복적 써클을 멀리 느껴지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갈등의 근본 원인이 시작되는 사람들의 '진짜 욕구'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던 것은 참 좋았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모든 해결방안이 있다.'는 선한 믿음이 뭔지모를 든든함을 주었다. 마치 "당연히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이야!."라고 부모가 아이를 믿어주는 만큼 아이가 스스로를 믿게 되는 것처럼.

2학기에 다시 2차 심화 워쿠숍을 듣기로 했는데, 내 안에 더 단단히 '믿음의 대화'가 자리잡으면 좋겠다.
8월에 마무리 쫑파티를 하기로 했다. 귀한 인연이었고 오래 이어져갔으면.


* 건강검진 수면 내시경

이번 건강검진때는 위 뿐 아니라 대장까지 내시경을 하게 되어 수면을 진행하게 되었다.
대장내시경도 비수면으로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후기를 찾아보니 매우 아프다고 해서 수면으로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내시경 하러 들어가기 직전까지 진짜 계속 갈등을 했다.

수면 상태에서 일부 쓰레기 의사들이 벌이는 추행들에 대해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던 터라 찝찝했을 뿐만 아니라 내시경 후 한 쪽 벽에 정신을 못차린 상태로 잠들어있는 일련의 사람들을 바라보니 긤한 공포가 몰려왔다. 저렇게 내 의지로 내 몸을 어찌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상태로 내 스스로 걸어들어간다는 것이 참을 수 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내시경이 끝나 무사히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다시 수면내시경 할래? 라고 하면 또 갈등할 듯. 
'내 의지가 박탈되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이리 심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방학 시작!
7월 둘째주부터 시작된 첫째의 방학! 둘째 어린이집이 아직 방학을 시작하기 전에 첫째와 함께 하게 된 이 자유시간에 홈스쿨링 맛보기를 해보려고 야심차게 준비를 했다.

첫째와 방학 시간표를 함께 짜고, 오전 2시간 정도를 엄마와의 시간을 남겨두었다.
첫째주에는 함께 찰흙으로 도자기 만들어 오븐에 구워 색칠하고, 쿠키굽고, 방학숙제로 대장간 보러 간다고 서울 불광역까지 다녀왔는데 너무 바짝 긴장해서 무리했는지 일주일만에 병이 나서 주말에는 앓아누웠다.
그 다음주에는 '어린이 인문학' 책과 '어린이 과학실험' 책 두 개를 번갈아가며 한 장씩 해보았다.
다행히 윤우가 잘 따라와주었고 재미있어 하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선생님이 되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경직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낄낄거리고 서로 장난치는 그런 시간이 첫째와 나 사이에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함 내려놓고.


* 제주도
7월 마지막 주 일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했다. 우도, 세화, 송당리에서 2박씩 묵으며 보냈고, 렌트카 없이 지내다가 마지막날 하루 렌트하여 돌아다녔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단순한 여행이라기 보다 제주에 대한 내 갈망을 좀 더 확인하고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여정이었다. 운좋게도 우도의 마리와 세화까지 4일동안 함께 지낼 수 있었고, 그녀와 종종 이야기하고 그녀의 일상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인형 선생님이신 안나 선생님도 마지막날에 만날 수 있었다. 하고싶은 일하며 먹고 살만큼만 벌면서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을 삶으로 살아내고 계신 분.
두 분 다 외지에서 제주로 내려와 정착하셨고, 제주를 사랑하셨다. 마리는 열정적이었고 안나샘은 푸근했다.

왜 제주였는지? 내려오시기 전에 주저함은 없었는지? 그 주저함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첫 만남에 불쑥 할 수 있는 질문들은 아니어서 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긴 인연 중에 어쩌면 곁눈질로 눈치챌 수도, 직접 물어볼 수도 있겠지.

그러리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다른 사람에게서 내 삶의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 밤에 비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다 창문으로 후룩!하고 밀려들어왔을 때, 나는 그 강인함에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비, 바람, 그리고 꿈틀대던 기억을 간직한 까만 땅. 제주의 모든 것이 여전히 나에게는 강렬하다. 나는 제주 안에서 생명을 느끼고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이 분명한 강렬함에도 내가 당장 짐을 쌀 수 없는 그 많은 이유들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나만의 해답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지. 돌아가든 비켜가든 아니면 통과해가든.

* 머리카락 보내다
제주에서 돌아와 나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소아백혈병 협회로 보냈다.
원래는 허리까지 길게, 진짜 기를 수 있는 만큼 길러서 보낼 생각이었다. 다시 없을 기회일 것을 알아서.

하지만 머리가 길어지니 스타일링에 대한 욕심이 자꾸 생기고 어떻게든 더 예쁘게 단장하고 싶어졌다. 머리카락에 이리저리 열을 주고 압력을 가하는게 머리카락에 좋을리도 없는데, 그리고 어짜피 기부할 예정이니 나에게 달려있다고 내 머리카락이 아닌데도 자꾸만.
더이상 가지고 있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기준길이 이상인것을 확인하고 싹뚝!

지금 내 곁에 있다고,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였다고 내 것인 것이 아니다. 그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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