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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신께 다가가며...

고래의노래 2012. 12. 16. 21:30

지난 9월부터 성당에서 교리수업을 듣고 있다. 세례를 받기 위한 신자 수업이다.

 

오래 전부터 천주교에 호감이 있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천주교 신자인 친구를 따라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여하고는 했다. 물론 식의 진행순서며 기도문, 성가는 하나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일어설 때 일어나고 앉을 때 앉는 것이 다였지만, 경건하고 차분한 그 분위기가 내 마음까지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천주교 신자인 내 친구들은 대부분 마음이 넓으면서 정의로웠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시는 여러 신부님들을 보며 편협하지 않는 종교의 진짜 모습을 보는 듯해서 훈훈했다. 평등, 사랑, 정의와 같이 모든 종교들이 추구하는 참된 가치들이 오로지 종교적인 행사 안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것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책을 읽으며 우주적 힘과 에너지를 믿게 되었다. 볼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와 연결된, 또는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어떤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신'의 형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우주적 힘과 연결되는 방법으로 명상을 권하는데 혼자서 이것을 수련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나는 오롯히 혼자만의 몫으로 여겨지는 이 구도의 길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힘'을 깨닫는 여정을 좀 더 여러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다.

 

또 곪을대로 곪아 결국에는 터져버렸던 엄마와의 갈등 상황과 조금은 특별한 윤우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이 모든 혼란스러움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음 속의 평화가 절실했다. 이렇게 못난 엄마를 둔 윤우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천주교의 문을 두드렸다. 교리수업을 받다가 만약 이 종교가 나의 생각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그 때 그만두더라도, 일단 천주교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현재까지 교리수업을 들으며 내가 느낀 것은 천주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느님과 내가 생각하는 '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어떠한 형상도 심지어 이름도 없으며 존재 자체일 뿐이라고 한다. 흔히 기도문에서 쓰이는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은 신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없는 그 존재에 가까이 가기 위해 인간이 만든 별명에 불과하다.

또한 이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천주교는 굉장히 성숙해진 것 같다. 타 종교를 존중하고 성경의 내용을 유연하게 해석할 줄 알며(아담과 하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노아의 방주 등이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상징이라는 해석) 종교가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나이를 무기로 젊은이들을 무시하고 대접만 받으려드는 기성세대들만 보다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세우기에 남에게 여유로운 진정한 어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윤우에게 그 힘에 대해, 존재에 대해 알려주기에 '신'만큼 쉬운 방법이 없었다.

아직 윤우와 함께 미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더니 요즈음은 자기도 기도를 하겠다고 나설 때가 많다. 이 사진에서는 장난스럽게 나왔지만 진지하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찡할 때가 있다. 어린이들은 그 분께 더 가까이 있으니 윤우는 어쩌면 나보다 더 신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기도를 했냐고 물으니 "우리 집에 아기를 빨리 보내달라고 했어."라고 한다. 윤우야, 하느님이 그 기도를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

 

기도가 끝나고 십자성호를 긋는 모습이다. 방법을 잘 몰라서 아미며 배며 아무데나 찍어대는데 참 귀엽다. ㅎㅎㅎ

 

내년에 내가 세례를 받고 나면 윤우에게도 세례를 받게 해 줄 생각이다. 원래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종교 안에 아이를 가두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갈등도 했지만 어렸을 때 '그 존재'를 알게 해주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기도하는 법을 알았다면 끔찍했던 그 시기에 조금 덜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부모에게도 말못할 좌절을 겪었을 때 윤우가 기도로 조금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만약 성인이 되어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뀐다면 당연히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적어도 삶과 우주를 온 몸으로 느끼는 이 시기에 알려주고 싶다.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주의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므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신께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어쩌면 항상 나와 함께였던 그 분을 이제서야 발견하게 되는 걸지도...

 

덧붙임)

천주교에 대해 믿음을 갖게 해주신 분당 성바오로 성당의 정일준 바르톨로메오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업이 재미있어서 교리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였는데 오래 함께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신부님 덕에 오랫만에 선생님을 동경하는 여고생 감성으로 돌아가기도 했네요. ㅋㅋㅋ

제가 마지막 선물로 드린 펜 잘 쓰고 계시지요? 언젠가 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너른 품성과 강직한 행동으로 천주교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해준 친구, 혜림과 다명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다. ^^ 내가 나의 또 다른 친구들에게 너희와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