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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윤우와 엄마의 새로운 시작

고래의노래 2012. 3. 6. 23:24
월요일, 윤우가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했다. 몇 주 전부터 3월에는 어린이집에 갈꺼라고, 아주 재미있는 일이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어린이집 가는 것 자체로 실갱이를 벌이지는 않았다.

윤우가 가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안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모들이 출자금을 모아서 직접 어린이집 터전을 마련하고 선생님과 영양교사를 채용해서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이다. 부모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유치원, 어린이집의 대표이며 소유권자인 '원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공동육아(共同育兒)'라는 뜻 그대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동체'인 것이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 어디로 보낼까 고민하고 정보를 찾으면서도 정작 '공동육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은 것 같다. 내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인터넷에 공동육아에 대한 정보를 흘려본다. ^^ 공동육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공동체와 공동육아' 조합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www.gongdong.or.kr/index.php?code=gongdong 또한 아이와의 여행기로 유명한 오소희님이 블로그에 쓰신 어린이집 선택에 대한 글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http://blog.naver.com/endofpacific/70117545787)

결혼 전부터 공동체 관련 책을 보며 '공동육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아이를 낳게 되면 꼭 이런 어린이집에 보내리라 다짐했었다. 아이 음식을 성의없이 만들고 아이에게 폭언, 심지어 폭행을 일삼는 어린이집에 대한 고발 뉴스들을 보면서 '이윤을 남겨야 하는' 곳에 아무런 대항력도 없는 어린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투명한 운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당사자들이 팔을 걷고 나서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 외에도 내가 공동육아에서 기대하는 점은 교육철학이 비슷한 부모들을 만나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항상 사람에 목말라하는 내게 '사람들끼리의 살부댐'은 언제나 나의 소망이었다. 아예 사주에 외로울 孤(고)자가 끼어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열망이 더 한 것 같다.-ㅂ- 이 곳,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내가 바라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생활기록부를 작성했다. 거북목을 한 채 잔뜩 긴장한 채로 찍은 윤우의 어색한 첫 증명사진을 서류에 붙이고 주저리 주저리 빈 칸들을 채우고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 어딘론가 떠나보낸다는 쓸쓸함, 이만큼 컸다는 대견함과 아쉬움이 뒤죽박죽 뒤섞였다. ^^


오리엔테이션날에 설명을 들으니 첫 등원날 '도시락'을 가져오란다. 엄마들 것도 필요하냐고 물으니 엄마들 건 터전에서 준비할테니 아이들 것만 챙겨오라는 것이다. 뭘 싸줘야하나 고민하다가 아직 나들이 가서 반찬과 밥을 따로 먹기에는 번거로울 듯해서 주먹밥 김밥(주먹밥재료를 김밥처럼 말아 자른 것 ;;;)에 곰돌이 치즈를 얹고 딸기잼 토스트와 간식으로 방울 토마토를 쌌다.
그런데 알고보니 도시락이라는 건 '식판'을 이야기하는 거였다. 요즈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들은 다 그렇게 자기 식판을 챙겨와서 먹은 후 집에 가져가서 설거지를 하나보다. 나는 몰랐다 .ㅠ.ㅜ 내 유치원 경험에 저런 건 없었고 공동육아 외에 다른 유치원을 고려하지 않아 일반 유치원 생활이라는 것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기에 못알아들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만 못 알아들었다는 거..ㅠ.ㅜ 그래도 '도시락'이라고 명명한 건 좀 헷갈리는 용어라고 주장하는 바다. 켁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신발장에 윤우 이름표가 써져 있고 사물함도 배정되어 있었다. 각 사물함에는 거렇게 한땀한땀 선생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따뜻한 환대였다.

어린이집에서는 따로 입학식을 준비해주지 않았다. 공동육아에서는 '어린이 재롱잔치'와 같이 실제로는 선생님들의 실력 뽐내기일 뿐 어린이는 쏙 빠진 허울, 형식뿐인 행사는 없다. 모두가 모이는 큰 행사라고 하면 한 해 동안 농사지을 텃발을 고르는 일과 김장하기, 공동육아 축제행사, 아이들 졸업여행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은 설레고 많이 두려운 신입 아이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는 작은 행사를 마련해준다면 어린이집에서의 시작을 훨씬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대안학교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면서 특별한 입학식을 경험한 욱이언니의 이야기를 듣고(http://sadeak.tistory.com/entry/연수의-유치원-입학식) 많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저 한땀한땀의 손바느질을 보자 미소가 떠올랐다. 겉으로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가득하다는 게 느껴졌다.


나무와 종이로 된 장난감이 가득한 어린이집의 놀이방.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장난감이라고는 없다. 오랜 손때가 묻은 나무 장난감들을 보고 있자니 편안함이 느껴졌다. 윤우도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오전 내내 윤우는 종이블럭으로 만든 터널에 나무 블럭 자동차를 통과시키며 놀았다.

이 곳에서는 자유놀이 시간이 참 많다. 아이들끼리 '마음대로' 노는 것이다. 유치원처럼 선생님 앞에 둥글게 모여앉는 시간도 적을 뿐더러 한글, 영어 특별수업도 물론 없다. 유치원 때는 초등학교를,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를,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면서 요즈음 아이들은 오로지 미래를 위해 산다. 오늘은 미래를 위한 시간이고 어린 시절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싫었다. 다시 오지 않을 유년기의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철저히 현재의 삶을 즐기면서. 이 곳에서라면 가능할 것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하는 기본 활동은 '나들이'이다. 아침에 등원하면 자유놀이를 조금 하고 바로 나들이를 간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놀이터나 야산으로 산책을 나가는 것인데 변화하는 계절을 몸으로 느끼고 주변 마을을 우리들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동육아의 교육철학 중 매우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으면 대부분 나들이를 간다고 한다. 이 점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숲 유치원 철학'과 매우 비슷하다. 이 곳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복장만이 있을 뿐!" ^^

이 날도 근처 놀이터로 나들이를 갔다. 좋아하는 그네를 타고 미끄럼틀을 몇 번 타더니 가자고 떼를 쓰길래 '윤우야 뛰어!!!"하고 부추겼더니 뛴다. -ㅂ-;;; ㅋㅋㅋ 이걸 시작으로 모든 아이들의 달리기 시합이 시작되었고 뒤이어 엄마들과 선생님들의 연합 이어달리기 경주. ㅎㅎㅎ
이 날 윤우랑 나는 8시에 곯아 떨어졌다.
 

둘째날, 오늘은 기존 형아, 누나들도 등원을 하고 등원시간도 9시 반까지이다.
어제 부랴부랴 산 '도시락 식판'과 수저통을 윤우 가방에 챙겼다. ^^;;; 파란책 수첩은 말로만 듣던 '날적이'! 아이의 생활에 대해서 어린이집 선생님과 부모가 메모로 소통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다른 시각으로 보는 윤우를 이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인다. ^^ 내 손을 거쳐 가는 우리 아들 날적이이니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윤우가 좋아하는 공룡과 자동차 스티커로 장식을 했다. 그리고 유진이가 기겁했던(ㅎㅎ) 이름 옆에 하트 뿅뿅도 필수로 추가!!!!


오늘도 등원에는 큰 갈등이 없었다. 비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9시 15분에 도착했는데도 우리가 1등이었다.
윤우는 "오늘은 이 방에서 놀아보자!"며 호기심을 보였다. 긍정적인 변화다. 종이접기에 흥미를 보이는데 아직 윤우에게는 무리이고 내가 해주기에도 무리였는데(;;;) 다행히 이 날은 아~~~~주 기초적인 종이접기 책을 찾아서 겨우 몇가지를 해줄 수가 있었다. 윤우가 처음 보는 붓펜도 있어서 신나서 그림그리는 중.

윤우랑 딱 붙어서 열심히 놀아주는데 함박눈이 와서(이 곳에서는 선생님과 엄마, 아빠들 모두 별명으로 부른다. 함박눈은 5세반 선생님) 어쩜 그리 아이랑 잘 놀아주냐고 한다. 평소 집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너무 민망했다. 어린이집에서의 이틀동안 난 정말 윤우에게서 한번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온갖 과장된 리액션과 괴성, 맞장구를 구사하면서 신나게 놀아주었다. 윤우가 집에 간다고 떼부리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못해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줄 수 있는 건데, 집에서는 눈에 보이는 집안일이며 스마트폰질에 아이의 놀이 요구를 번번히 묵살하기 일쑤. 부끄럽다.


공동육아에서는 자연과 사람 속에서 배우고, 나이와 장애를 넘어 통합을 강조하는 생활교육을 한다.
즉, 인지학습을 지양하고 세시절기에 따른 전통문화와 자연을 체험하며 5, 6, 7세가 특별한 구분없이 서로 어울리며 '돌봄과 배려'를 경험한다. (통합교육의 긍정적인 효과는 <양육쇼크>라는 책에도 나와 있다. 연령별 구분으로 또래끼리 한 공간에 오래 머물게 할수록 경쟁심을 유발하여 공격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리뷰 : http://whalesong.tistory.com/352)

5세는 다람이, 6세는 토순이, 7세는 강아지로 그룹을 구분하기는 하지만 자유놀이 시간이나 나들이 때 이런 구분은 사라진다. 하지만 친구조차 '장난감 뺏는 아이들'로 생각하고 있는 윤우가 자기보다 힘세고 키큰 형아나 누나들과 처음부터 잘 섞일 리가 없었다. 자기가 놀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같은 놀이감을 만지기만 해도 나를 쳐다보며 울상이다. 이 날은 어제와 달리 집에 가겠다며 심하게 울기도 했다. 점점 나아지겠지...특히 누나들이 잘 보듬어주리라고 기대해본다.
오늘보니까 6세, 7세 남자아이들은 그야말로 통제불능 말썽꾸러기들이다. ㅎㅎㅎ 5세는 황금기였다. 그저 마냥 귀여운 시기! 6세 넘어가니까 귀엽지 않고 그냥 개구쟁이들이다. ㅋㅋㅋ 윤우의 귀여움도 이제 유통기한 1년 남았구나.


형아, 누나 친구들이 함박눈이 읽어주는 이야기책을 들으러 다른 방에 모인 사이 윤우는 혼자 남아 편안하게 소꿉놀이를 했다. 소꿉놀이를 관심있어 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는데 이제 보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고 다른 때에는 친구들이 너무 많이 모여있어서 윤우는 차마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건 같다. 나에게 이것저것 요리를 해주며 한 상 푸짐하게 차려준다. 나무토막으로 만들어진 '포도과자'와 따끈한 차를 대접받으며 나도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윤우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시작이다.

공동육아는 부모가 참 바쁘다. 터전 청소도 해야하고 어린이집의 행정적인 업무 처리도 담당해야 한다. 재정적인 부분도 물론 직접 챙겨야 한다. 윤우가 새로운 친구들, 형아, 누나들과 만나고 놀면서 친해져야 하는 것처럼 나도 기존의 엄마, 아빠들(이 곳에서는 줄여서 '아마'라고 부른다.)과 잘 섞여서 소통해야 할 것이다. 이 곳에서 내 별명은 '크림빵'이다. ㅋㅋ 크림빵으로서의 새 인생이 시작되는 거다.

또 하나, 나는 윤우의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윤우에게 항상 하는 말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ㅋㅋ '진짜 어른들의 일'로만 보였던 운전을 직접 하게 되니 하나의 '능력'이 추가되었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 엄마가 운전에 익숙해질 때까지 CD도 틀지 못하고 윤우가 하는 말에도 대답해줄 수 없다고 하자 윤우는 내가 운전하는 내내 말없이 조용히 있어 주었다. 이렇게 어른도 무언가 새로운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보고 윤우도 어린이집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

가방을 맨 듬직한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에서 꼬물거리던 '꿍이'가 언제 저리 컸나 싶다.
엄마없는 세상으로 한 발 내딛은 윤우야, 마음놓으렴.
엄마는 이렇게 항상 네 뒤에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