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점선뎐> - 나의 세상으로 아이가 들어왔을 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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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 나의 세상으로 아이가 들어왔을 뿐

고래의노래 2010. 6. 28. 22:39
점선뎐 - 10점
김점선 지음/시작

그녀는 나에게 합쳐지지 못한 3개의 조각이었다. 웃는 말 그림을 그린 화가, 장영희 교수의 절친 그리고 <10cm 예술>의 저자. 그러다 어느 날 한 잡지에서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읽다가 그녀들이 모두 김점선,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그녀를 잘 대변한다는 몇몇 에피소드들이었다.

기타연주와 노래 소리만을 듣고 단박에 결혼을 결심하여 청혼하고 그 날 '합방'을 통해 바로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야 예술가들의 '으레 그렇고 그런 기행'으로 보아 넘길 수 있다지만 정말 놀라웠던 것은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그녀의 응징! 차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보면 기필코 쫓아가 창문을 두들겨 열게 한 후 쓰레기를 도로 차 안으로 집어 넣었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넘치고 넘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에 대해 호기심이 일던 차에 며칠 후 도서관 버스에서 그녀의 자서전적 에세이 <점선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녀 자체보다 '그렇게 놀라운' 그녀가 엄마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고 해왔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끊임없이 내 안으로 파고들어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예술가로서, 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을 일부 희생해야 하는 엄마의 자리를 그녀는 어떻게 견뎌왔을까.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섬세한 감성과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술가로서의 떡잎은 이미 시퍼랬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그녀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잘못을 하고 들어오면 어른의 권위로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이고 같이 앉아 무엇을 잘못한 것 같은지 토론을 했다고 한다. 처음엔 악이 바짝 올라 울그락 불그락 했던 그녀도 몇 시간의 이야기 끝에는 항상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소리치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교육의 효과야 요즈음 엄마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온 살림을 손으로 처리해야 하고 바글바글한 형제들 수발도 들어야 하는 고된 옛날 어머니의 입장에서 딸아이에게 저렇게 평화로운 깨달음의 방법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기만 하다.

천성의 예술가적 기질에다가 어린 시절의 '자기성찰' 연습을 통해 뼈 속까지 예술가가 된 그녀는 '진짜 예술을 알려면 결혼을 하라'는 선배의 술주정 섞인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단박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고된 생활고와 챙겨야 할 가족은 다행히 그녀의 예술에 방해요소가 되지 않고 촉매제 역할을 한다.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그녀는 죽을듯이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그림에 대한 그녀의 뜻밖의 '우직함'에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예술의 신이 총애하고 있는 것만 같은 그녀였는데, 막상 그녀 자신은 영감이 거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고 잘못 그린 그림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점은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었다는 것. 즉,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림을 너무나 그리고 싶은데 예전처럼 영감도 떠오르지 않고, 막상 그렸다가 만족스럽지 않은 그림이 나올까 시도조차 안하게 되는 요즈음의 내 모습을 절로 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그녀의 육아방법은 요즈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육아철학과 거의 흡사했다.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바른 어른이 되어야 하며, 이렇게 성장했으면 하고 바라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것. 심지어 그녀는 자연 속에서, 생활 속에서의 배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아들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기까지 했다. ^^

자기 안에서 끝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하는 그녀는 그래서 신념도 확고하며, 타협을 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그녀를 예술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게 했고 결국 훌륭한 예술가가 되게 했고 좋은 엄마이게 했지만, 내가 놀라워 했던 것처럼 '엄청난 싸움꾼'이게도 했다. 사소한 도덕을 지키지 않아도 그녀에게 발견되면 그건 투쟁감이었다. 그녀는 바른 말들을 또박또박 지치지도 않고 쏟아내었고 그건 상대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타협하지 않는 신념을 남에게 전하는 방법 또한 '정석' 그대로였고 타협이 없던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 곁에는 많은 문화 예술계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사실 그녀의 육아과정에서 이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은 역사기행을 따로 가거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지 않아도 그녀의 역사학자 친구, 작가 친구, 디자이너 친구들 때문에 생활 자체가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 배움은 학습의 개념 외에도 부모 이외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어른을 많이 만난다는 굉장한 의미가 있다. 부모 이외에 제대로 된 '어른 친구'를 사귀어 보지 못했던 나는 아직까지도 이 점이 못내 아쉽다.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농익은 인생의 지혜로 나를 품어주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책을 다 읽어가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엄마의 자리를 견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세상에 아이를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로서도, 예술가로서도 바로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성장 속에 아이를 참여시키다 보면 아이도 자연스레 성장한다는 말이 이런 뜻일 것이다.

덧붙이는 이야기로,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바로 이것이었다!
아들의 신부감이 드레스를 입고 치르는 전형적인 결혼식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혐오스러워 한다. 동대문에서 베일을 끊어다가 머리에 쓰고 거리를 달리라고 독설을 날리는데, 이 소식을 듣고 친구인 앙드레김이 말한다. "저희 집으로 천 가지고 오세요. 꿰매 드릴께요." 그래서 며느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드레스하러 앙드레김한테 갈래?" 아아아아 그 며느리의 표정이 어땠을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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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작가인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런 세월에 나는 백조왕자를 기억해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미친 듯이 풀옷을 짜는 공주를 생각해냈따. 마녀라고 부르면서 변명을 요구하는 군중들을 생각해냈다. 그러면서 그 침묵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몰두를 같이 기억했다. 그렇다. 말없이 몰두하는 것이다. 말없이 열심히 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세상이 내게 건 마술도 풀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결혼은 건강하고 씩씩하고 힘찬 생활의 시작이다. 뭐든지 스스로 하는, 두 또래끼리 모여서 모든 걸 그들끼리 결정하고 실천하는 모험과 실험의 생활이다. 탐구여행이다.

나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해질 수 있고 훌륭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결혼 자체에 대해서는 할까 말까 몇년 동안 생각하고 했지만 결혼할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간에 나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옳은 어른이 될까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는 가르칠 의도로써 가르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사람을 봄으로써 더 큰 것은 얻게 된다.

집에서의 일상생활에서, 스승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제자를 대하듯이 경건하게 아이를 대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내가 독점해서 관리하고 있는 듯한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수학 포기했다는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어려우냐고 묻고 달력을 찢어 서로 풀어본 후 바꾸어 보았다. 동이 틀 때까지 그렇게 하기를 열이틀. 그 이후 엄마 이제 됐다 하더니 안 배운 문제를 풀었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 밤새워 그림을 그려서 그걸 팔아서 그들에게 주리라.)

해가 바뀌는 시간에 한 행동이 다음 해를 지배한다는 미신! 내가 만들어 스스로 신앙하는 미신! 그 미신을 평생 실행하고 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나는 나 자신을 닦달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댄다......나는 전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그림을 그린다.
나에겐 영감이 떠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 모른다....나는 대부분의 아침이 피곤하고 무겁다. 전혀 영감에 차 있지도 않고 열망에 들떠있지도 않을 때가 거의 전부다. 그래도 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지 시작할 무렵은 그렇게 무겁고 힘들다. 그래도 자꾸 그림을 그려나가면 어느 샌가 나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그림 그 자체가 요구하는 곳으로 내가 따라가게 된다.

전혀 무방비의 생명체가 그냥 놔두면 죽어버리는 생명체가 주어지면, 그 완벽한 의존이 주어지면 인간은 거의 신이된 듯 변화한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듯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 더러운, 나 자신 속에 낀 정신적인 때를 털어버리고 싶다. 좋은 그림만 발표하겠다는, 좋지 않은 그림은 집안 식구들에게보차 보이기를 꺼려 하던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 우중충한 정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날, 나는 자유를 찾을 것이며, 그 자유 속에서 행복할 것이며, 그 자유의 짧은 허용에도 나는 감사할 것이며, 인간으로 태어난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며 크게 울지도 모른다.....나는 이런 '때'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없어야 하고,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망가져야 하고, 내게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빠져야 하고, 나 자신조차 자신을 포기할 만큼 붕괴되어야 한다.....내 눈이 나빠지는 것, 내 무릎이 점점 더 삐걱이는 것, 내 몸 속에 피곤이 덕지덕지 쌓이는 건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