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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만들고 그려보자

앨리스와 토끼

고래의노래 2007. 10. 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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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이 너의 마음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믿게 해줘."

"문이나 열어. 그게 네가 가야 할 길이야."

건너편의 빨간 지붕 집에서 토끼는 소리쳤다.

보라색 지붕 집의 앨리스는 보라색 문을 열었다. 문으로부터 하나의 길이 나 있었다.

"끝없는 길". 팻말에는 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빨간 지붕 집에서도 문이 열리고 토끼가 나왔다. 그 문도 길다랗게 이어지는 길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길로 가는 길." 빨간 지붕으로부터의 길 이름은 그랬다. 길과 길 사이에는 천길 낭떠러지 뿐이었다.

"다른 길이라니....뭐와 다르다는 거야?"
먼 거리 때문에 토끼에게 잘 안 들리면 어쩌나 하며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앨리스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여기서는 비껴나가는 의미 따위는 없어. 끝없는 길은 말 그대로 끝이 없다는 거야. 그리고 다른 길로 가는 길이라는 것도 그 말이 주는 의미 외엔 아무것도 아니야. 언어는 정직해."
가늘게 실눈을 뜨고, 고개를 약간 올리며 토끼는 말했다.

앨리스는 길 가에 앉아 낭떠러지가 어느 정도 깊이인가 살펴보았다. 주변에 보이는 가장 큰 돌맹이를 던졌다. 아주아주 오래도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 앨리스는 소리를 듣는 걸 포기했다.

"낭떠러지가 끝이 없어. 근데 이 길을 가야 한다니....그냥 다시 돌아가면 안 될까?"

말을 끝내며 앨리스는 뒤를 돌았지만, 이미 길의 마지막이었던 보라색 지붕 집은 사라지고, 대신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길만 보일 뿐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언어가 곧 힘이야. 네가 한 말에 대해 넌 책임을 져야 해. 자, 이 길이 너의 언어가 선택한 유일한 미래야."

앨리스는 곧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언어가 곧 힘이라는 토끼의 말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토끼도 먼 발치에서 앨리스의 길과 아직까지 평행하게 이어져 있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 지도 모른 채 걷기만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의 "다른 길로 가는 길"이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그것은 앨리스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어? 어디로 가는거야?"

며칠 간의 침묵을 깨고, 놀란 앨리스가 물었다.

"이 길이 나를 인도할 뿐 나의 선택은 빨간 지붕 집을 나설 때 이미 정지되어 있었어. 그리고 그 선택은 너의 언어가 만들어 낸 거였고."

"잠깐!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내 길은 너와 방향이 다르잖아!"

토끼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멀어져 갔다.

앨리스는 길 가에 서서 발을 동동 굴르며 눈물을 흘렸다. 토끼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내가 처음 너를 보고 따라 갔던 건....그 순간 너를 사랑해버렸기 때문이야........."


................앨리스는 낭떠러지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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